들어가며
예전에 직장폐쇄 대상자에 관한 생각에서 말했듯이 직장폐쇄는 노동조합법에서 시적 요건 하나만 규정되어 있어 그 효과와 내용 등이 모두 해석론에 맡겨져 있다. 그래서 직장폐쇄를 하면 임금지급의무 면책효과가 발생한다고 모두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노조법에는 법률효과인 ‘사용자는 임금지급의무를 면한다’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안그래도 직장폐쇄 자체가 마이너한 분야인데, 그 효과에 관한 이론적인 내용은 아예 관련 내용이 없는 듯 하다. 판례 및 교수저들의 내용도 직장폐쇄에 관해서는 직장폐쇄의 정당성 요건 또는 직장폐쇄의 법적 근거를 중심으로 다룰 뿐, 직장폐쇄를 하면 임금지급의무 면제 효과는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방금 말한 것처럼 노조법은 직장폐쇄의 효과로 임금지급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임금지급의무 효과는 해석론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직장폐쇄는 임금지급의무 면제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므로 임금지급의무 효과가 없다면 굳이 직장폐쇄를 할 이유가 없다.(단, 현실에서는 임금지급의무 면제보다는 쟁의행위 근로자들을 사업장에서 퇴거시키는 목적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임금지급의무 면제 효과에 관해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하지만 목적이 당연히 수단을 발생시키지는 않으며 이론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즉, 직장폐쇄가 임금지급의무 면제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까지는 좋은데, 어떻게 면제 효과를 발생시키며 누구에게 얼마나 발생시키는가?
직장폐쇄의 법적 성질
직장폐쇄의 성질에 관해서는 노동조합법이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명확한 개념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사용자가 근로자들의 노무 수령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은 근로자의 노무제공의무와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쌍무적 대가관계로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정당하게 노무를 제공하면 사용자는 이를 정당하게 수령할 의무도 있다. 그런데 직장폐쇄는 근로자의 노무제공을 수령할 것을 거부하고 이에 따라 임금지급도 거절한다. 이는 근로계약이 원칙적으로 예정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며 법적 해석을 통해 이러한 상황의 법률관계를 해석해야 한다. 노동법 상 규율이 따로 없는 문제는 민법 일반 원리를 바탕으로 적용해 밝혀야 하는데 노동법 상 직장폐쇄에 관한 규정이 미약하므로 민법 상 계약 원리를 바탕으로 이 관계를 해석해볼 수 있다.
근로자의 노무제공의무와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의 쌍무적 대가관계가 근로계약의 본질이므로 근로자가 정당하게 이행제공하는 노무제공을 사용자가 수령 거부하는 것은 민법 제400조 상의 채권자지체(수령지체)가 될 수 있다. 즉 채무자가 주려는데 안 받는 것이고, 채무자는 채권자가 이를 받지 않으면 그 채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근로자가 노무를 제공하려 해도 사용자가 직장을 폐쇄하여 일을 못 하게 하면 근로자가 아무리 노무를 제공하려 해도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사람의 노동은 물질이 아니고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현재의 노동을 이후에 제공할 수는 없다. 즉 사용자의 수령거부로 근로자의 노무제공의무는 이행불능이 된다.
민법은 쌍무적 대가관계에서 민법 제537조에 따라 채무자의 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 채무자위험부담주의에 따라 그 반대채권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채권자지체가 있는 경우 위험이 이전되어 당사자 쌍방 책임 없는 사유에도 채무자가 그 반대채권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민법 제538조 제1항 후단) 이를 직장폐쇄를 통한 노무수령 거부에 적용해보면 사용자가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것은 채권자지체가 될 여지가 있고 이로 인해 채무자인 근로자가 노무제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므로 근로자는 노무를 실제로 제공하지 않았어도 그 반대채권인 임금채권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직장폐쇄는 사용자가 노무수령을 거부했음에도 근로자가 임금채권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사용자가 면책되는 것인지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교과서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를 면책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몇가지 가설들
1) 민사상 채권자지체 면책설
앞에서 본 것처럼 문제의 소지가 채권자지체에 있으니 해결도 채권자지체 면책으로 하는 것이다. 상당히 민사법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폐쇄에 사용자의 채권자지책임 면책 효과가 있어 근로자 노무제공 수령 거부해도 사용자에게 위험이 전환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있다. 문제 발생의 원인과 직장폐쇄의 본질인 ‘노무수령의 거부’를 다루며 효과의 법적 전개를 정교하게 다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는데, 직장폐쇄가 채권자지체를 면책시킨다는 노동법상 근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조합법 제3조의 쟁의행위에 따른 민사상 면책 규정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사용자가 근로자측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청구할 수 없다는 뜻이므로 사용자가 민사상 책임을 면책받을 수는 없다.
2) 노동법적 효과설
직장폐쇄에 따른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 면책은 민사법적으로 채권자지체, 위험전환 등을 통해서 계약법 법리로 풀어낼 것이 아니라 노동법이 특수하게 인정한 효과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직장폐쇄에 관한 98다34331 판례는 직장폐쇄의 근거(임금지급의무 면책 근거가 아니다)를 노사형평설, 즉 근로자의 쟁의행위로 사용자가 현저히 불리한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노사형평의 관점에서 사용자에게 쟁의행위수단으로 직장폐쇄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이는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특수한 법리라고 할 수 있는데 직장폐쇄의 효과 역시 이에 연동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쟁의행위로 정상적인 사업 운영이 안 되는 상태에서도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무제공을 수령하여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사용자에게 불리한 일이므로 노사형평 관점에서 그 의무를 면제시켜 준다는 것이다. 일반 원칙인 형평의 원칙을 이용하는 것이라 노조법 상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그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정교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행위의 성격 등을 살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효과가 나타나는지 분석하는 대신 그냥 노조법이 그러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는 민법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해 자주 나오는 얘기인 ‘일반원칙으로의 도피’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약한 기반 위에 강력한 효과인 임금지급의무 면제 효과를 인정하는 것은 안정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나의 견해
그래도 노동법적 효과설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노동법은 사법과 공법의 중간에 있는 사회법이다. 그리고 노동조합법은 더더욱 집단적 관계를 다루기에 개인을 전제로 하는 민사법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민사법은 노동법의 일반법이기에 노동법으로 규율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민사법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하지만 특성이 다른 부분까지 우선적으로 민사법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직장폐쇄는 집단적으로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를 일대일 근로계약 관계에서의 노무수령거부로 환원하여 민사법 상 계약 권리의무로만 해석하는 것은 노동법의 특수한 법리와 정합적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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