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중에서도 판사는 가장 멀게 느껴지는 역할인 것 같다. 단지 자신이 생각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하게 부딪히는 주장들 사이에서 판단을 하기 위해 엄중하고도 멀리 있어야만 하는 것 같다. 마치 감정이라도 가지면 한쪽에 치우쳐진 판결을 하기라도 할 듯이 감정이 제거된 모습이다. 사실 그러면 요즘 말이 나오는 것처럼 AI가 판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처럼 엄정하거나, AI와 같이 일체의 감정도 없는 사람이 아니다. 판사는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법정에 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고 후회할 때도 있다. 어쩌면 판사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린 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와 괴리된 법조계와 법정에 대한 괴리일지도 모른다. 저자인 문유석 판사 역시 글을 쓰고 사람들이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멀게만 느껴졌던 판사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알게모르게 판사와 같이 공부를 많이 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일반인과는 생각이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기존의 고시라는 방법을 통해서 세상과 담 쌓은 채 공부만 하도록 한 현실이 정말로 법조인을 다른 세상에 몰아넣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판사라는 자리에 앉은 것은 사람이고 그들은 조금 다르지만 다른 사람과 유사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법을 업으로 삼을 뿐 항상 법에 대한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법과 관련짓는 빈도는 높겠지만 사람에 대한 것, 한국 사회에 대한 것, 삶의 어려움에 대한 것 등 다양한 영역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판사와 같은 법관들을 법정이라는 철옹성에 갇혀 세상과는 괴리되어 세상을 볼 줄도 모른다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보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자기 생각이 맞다 말하며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법정은 세상 모든 더러운 곳이 모인다. 하하호호 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은 법정으로 오지 않는다. 항상 화나있고 억울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법정에 모여 법관과 대면한다. 삶의 가장 어두운 현장을 마주하는 사람이 하는 생각은 오히려 세상에 부딪히며 하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특히나 파산부의 경험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고 알기 힘들었던 영역을 새롭게 지적하는 부분이어서 가장 기억나는 부분이었다. 최소한의 요구가 높은 이 사회에서 금융기관의 약탈적 대출에 쫓겨 파산하는 사람들이 모랄 해저드인지, 아니면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덫을 놓아 약탈하는 사람들이 모랄 해저드인지 생각해 봐야했다. 소득은 올라가지만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근원을 생각하게 해 주는 부분이었다. 또한 아동자립시설에서 직업 교육 대신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 꿈을 갖고 감성을 지니게 한다는 부분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나는 매우 근대적인 인간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고 효율성이 높은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소제목이 말했듯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무엇을 가지냐보다 어떤 느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 무책임한 긍정론이 아니다. 마음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리고 그 때 가지는 것이 더 의미 있어진다. 아이들이 사회학과에 대해 최대한 정확히 알기를 목표로 했던 나의 전공소개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뒤돌아 봤다. 정보를 최대한 정확히 알기보다는 자신이 사회학과라면 하고 꿈꾸게 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법조인의 에세이집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검사내전과 비교하며 읽은 편이었다. 미묘하게 다른 두 사람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소년법원에 대해 문유석 판사는 조금 더 소년범의 미래와 맥락을 신경 쓰는 반면, 검사내전은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법관들이 법관이기에 잘 모른다고 말하고 법정은 어쩌다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며 가벼운 온정은 행복한 결말을 낳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인물의 성격차이일 수도 있지만 관점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 신기한 점이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남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에서는 고개가 자주 끄덕여졌다. 저자는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썼고 그 중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끝없이 성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생각도 있었다. 성찰, 그런 만큼 냉철하게 생각하지만 따듯하게 사회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
약 4년 전, 판사유감을 읽고 썼던 서평
그 때는 로스쿨 입학 전이었다. 아직 사회학과 학부생이어서 그런지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나보다. 아직도 파산부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남의 돈으로 한탕 하려다가 실패해서 파산한 사람 이야기는 뉴스를 달군다. 그러나 가족 중 한명이 아파서, 오래 만난 사람 정을 못 이겨 보증을 서서, 사업 중 배신을 당해서 파산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삿거리도 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타인의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구제해 달라는 모럴 해저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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