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 2023. 2. 23. 선고 2019헌바93, 2019헌바254(병합) 전원재판부 결정'(이하 해당 판례)은 법령정보센터 등에서 판례가 제공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casenote로 원문을 보았다.
해당 판례는 2023. 2. 23. 선고된 최신 판례다. 공법 정리하면서 최신 판례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판례 내용이 눈에 띈 것은 서면사과 조치가 양심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는 판례 결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 변호사시험 공법 기록형 기출에서 다뤘던 쟁점에 관한 판례기 때문이었다.
판례보다 먼저 나타난 문제
2014년 제3회 변호사시험 공법 기록형에서 제시된 상황은 해당 판례와 거의 유사한 상황이었다. 학교폭력이 발생해서 가해학생 서면사과 명령을 한 사실, 청구인은 이를 다투어 취소소송을 하면서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을 한 상황이다. 적용되는 조문도 기록형 문제와 이 판례사안 모두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제1호의 서면사과조항이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씩 차이가 있기 한데 해당 판례를 보고 문제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사실관계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놀라운 건 문제가 먼저고 이 사건 판례가 나중이라는 사실이다. 3회 변호사시험은 2014년 1월에 실시되었는데 이 사건은 2018년 경에 발생했다. 신기한 일이다.
<구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① 자치위원회는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하여 가해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수 개의 조치를 병과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할 것을 학교의 장에게 요청하여야 하며, 각 조치별 적용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다만, 퇴학처분은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가해학생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은 (구) 자치위원회 (현) 심의위원회가 학교장에게 요청하여 가해학생에게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면사과 조치를 시에는 가해학생에게 서면사과 할 의무가 부과되므로, 가해행위 자체를 부인하거나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에게는 그의 의사에 반하여 특정한 표현을 하도록 강제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가 문제된다.
4회 변호사시험 공법 기록 기출을 풀 때에는 소송 대리인의 입장에서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서면사과 조치 규정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양심의 자유에 관한 일반론도 제시하고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에서 서면사과 조치가 일으키는 문제 등을 열심히 논해봤다. 해설집에서는 이 사안에 딱 맞는 판례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딱 맞는 판례가 문제보다 뒤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달리 봤다.
양심의 자유 침해가 아닐까
해당 판례를 보기 전에 꼭 알아야 할 판례가 있다. 바로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으로서 사죄광고를 포함시키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본 헌법재판소 1991. 4. 1. 선고 89헌마160 판례다. 헌법 제19조 상의 양심의 자유의 일반론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싣고 있어 헌법 공부 시 무조건 보았을 판례다. 이 판례에서는 ① '윤리적 판단을 국가에 의해서 외부로 표명받지 않을 자유' 역시 양심에 자유에 포함되며, ② 따라서 사죄광고 강제는 양심의 자유 침해가 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 1991. 4. 1. 선고 89헌마160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여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바, 여기의 양심이란 세계관·인생관·주의·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고 볼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에는 널리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할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덜 제한하는 명예회복에 필요한 다른 처분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고 또 금전배상청구도 배제하지 않는 터이며 결코 사죄광고만이 명예회복에 유일무이의 수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구태여 가해자에게 양심표명의 강제 내지 굴욕감수를 강요하는 사죄광고제도는 어디까지나 과도한 것이며 또한 불필요한 국민의 기본권의 제한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해보이는 서면사과 조치에도 이 판례를 대입한다면 서면사과 조치 역시 개인의 윤리적 판단에 반하여 그와 다른 표명을 하도록 강제하고, 적어도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나 역시 4회 공법 기록 기출 문제 답안에서 이 판례를 들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논증했었다. 그러나 해당 판례에서 헌법재판소는 결을 달리해 본다.
해당 판례는 서면사과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과잉금지원칙을 심사하면서는 '가해학생에게 반성의 기회 제공 및 피해학생의 피해회복'이라는 목적의 정당성, '가해학생 교육과 피해학생 피해회복을 통한 학교폭력 해결'이라는 수단의 적합성이 있다고 보고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 학생에 대한 교육적 측면을 고려해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 균형성이 있다고 보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본다. 위에서 본 89헌마160과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헌법재판소가 판례를 바꾸었다거나 혹은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사죄광고와 서면사과는 다르다
해당 판례는 89헌마160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윤리적 판단에 반하는 표현을 강제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두 판례는 엄밀하게 같은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죄광고와 서면사과는 방식이나 효과가 같은 제도라고 볼 수는 없다.
구 사죄광고 제도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에만 인정되는 손해배상에 갈음하는 구제수단으로서 대중에게 그 사죄를 널리 알려야 한다. 단순히 개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을 넘어서 다수에게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그 회복을 위해서 그 다수에게 잘못된 내용을 알렸음을 사죄하고 정보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직관적으로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알렸다면 그 회복은 정정보도처럼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알려야 회복의 효과가 있겠지만. 그럼에 정정 광고도 아니고 사죄광고여야 할 이유가 없다. 헌법재판소 또한 사죄 광고는 '가해자에게 부당하고 불필요한 굴욕만을 강요', '응보적 보복', '보복감정의 만족'과 같은 표현을 써가며 사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주 목적이 굴욕감을 주도록 하여 응보적 보복을 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서면사과는 그 사과 내용을 대중에게 공개하여야 할 의무가 없다. 서면사과 조치는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그 사과 내용을 공지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서면사과 조치는 대중에게 자신의 사과 내용을 밝히게 하여 굴욕감을 주는 방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서면사과조항이 공개사과 방식이었다면 그건 사죄광고와 유사한 결론이 되었을 것이다. 행정소송이긴 하나 서울고등법원 2019. 5. 31. 선고 2018나2068422 판결 에서는 학생에 대한 징계처분으로서의 공개사과명령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어쨌든 사죄광고와 서면사과는 본질적으로 같은 제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죄광고와 서면사과가 다르다는 것은 이에 대해 각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근거지 사죄광고는 위헌이지만 서면사과는 합헌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사를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을 때 양심의 자유는 이미 침해되는 것이고 그 내용의 대중 공개 여부는 침해로 인한 피해 정도의 차이를 일으키는 것이지 1:1 로 강제 사과를 했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만 했으니 나는 양심에 그다지 반하지 않는 행동을 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말한 해당 판례의 과잉금지원칙 심사에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 판단은 타당하다. 그러나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판단에는 의문이 들고 그 중에서도 법익의 균형성 부분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해당 판례의 다수의견은 서면사과조항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으로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및 교육, 교우관계 및 학교공동체의 회복을 들고 있는데, 이로써 확보되는 공익이 양심의 자유 제한으로 발생하는 사익 제한보다 더 큰지 의문이다. 이러한 공익들이 보호되려면 서면사과조치가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서면사과조치를 하고 가해자가 이를 수행한다고 해서 실제로 공익이 달성되는지 의문이다. 서면사과를 통해 가해자가 학교폭력을 반성하고 피해학생은 피해를 회복하는 효과가 나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나 아직 사과하지 않은 제한적인 경우여야 한다. 상황을 2X2 표로 정리해볼 수 있다.
사과하려고 함 | 사과하지 않음 | |
가해자의 가해사실 인정 | 서면사과가 의미가 없음(1) | 서면사과 조치 효과적(2) |
가해자의 가해사실 부정 | 상정하기 어려움(3) | 진정한 사과 아님(4) |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해버리면 서면사과 조치는 의미가 없어지므로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은 상황이 문제된다.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서면사과조치는 가해자가 가해사실은 인정하고 사과할 마음도 있으나 주변의 눈치, 어색함, 감정적 이유 등으로 사과에 나아가지 않은 경우(2번 상황)에나 효과가 있다. 가해자는 서면사과 조치를 명분 삼아 서면사과에서 진심을 담아 사과할 것이고 피해자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아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 망설이는 가해자에게 사과할 자리를 만들어주어 가해자의 올바른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그 외의 경우들은 위에서 말한 공익들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1번 상황처럼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하고 사회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서면사과 조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덤일 뿐이다. 그대로 두어도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3번 상황은 상정하기 어렵다. 물론 가해사실을 부정하나 징계를 회피하기 위해 사과하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해사실을 부정하면서도 실제로 사과할 의사가 있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 4번 상황은 공익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부정하고 사과할 마음도 없는 상태에서 서면사과를 명령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반성하고 피해자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해당 판례는 서면사과 조치가 '가해학생이 사회 규범과 도덕에 대한 인식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적인 조치'라고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사과가 교육적인지 의문이다.
헌법재판소 1991. 4. 1. 선고 89헌마160
원래 깊이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인 판단·감정 내지 의사의 발로인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이라야 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사회적 미덕이 될 것이고, 이는 결코 외부로부터 강제하기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이의 강제는 사회적으로는 사죄자 본인에 대하여 굴욕이 되는 것에 틀림없다.
앞선 사죄광고에 관한 판례에서도 진심이 아닌 사과의 가치에 의문을 표시했다. 오히려 가해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사과를 강제하는 것은 자신의 윤리적 판단이 외부적 힘에 의해 부정당하는 충격, 내심의 판단과 다른 표현을 하면서 발생하는 굴욕감을 주어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사회규범과 도덕에 관한 인식을 올바르게 정립하도록 하는 교육조치일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는 처벌 회피를 위해 반성 없이 사과만을 하는 경험이 가해자의 사회 규범 인식을 오히려 왜곡할 수도 있다. 동시에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바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사과를 받았다'는 기록만 남은 피해자에게는 피해 회복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제2의 피해가 우려된다. 반면 윤리적 판단과 다른 의견 표명을 강제함으로써 발생하는 양심의 자유 제한은 결코 작지 않다.
결국 상정할 수 있는 상황들과 그 상황들에서 발생하는 공익과 사익의 형량을 비교해보면 적어도 법익의 균형성에서 공익과 사익 간의 균형이 맞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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