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새로운 판례가 나와도 대부분은 법률관련 신문에 실린다. 그러나 가끔 큰 영향을 미치는 판결들은 주요 일간지 기사에 실리기도 한다.(정치적 문제가 결부된 판결은 제외한다.) 이 임금피크제 판례도 주요 일간지 기사에 걸렸던 판례다. 2022년 노동법 판례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학년 여름 노동팀 인턴 당시에도 변호사님들이 크게 영향을 미친 판례라고 말씀해 주셨던 판례다.
임금피크제에는 소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있는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의 정년을 늘리는 대신 일정 연령 이상 도달한 근로자의 임금을 낮추는 제도이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삭감하는 제도이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앞둔 근로자들의 임금 부담이 과도하게 높아져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판단에서 도입된 제도다. 이 판례는 그 중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판례다. 인턴 당시에 듣기로는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은 존재했으나 그전까지는 임금피크제 도입하면서 대부분 취업규칙 상 불이익변경 여부, 즉 임금피크제 자체보다도 도입 절차의 정당성이 주로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이 판례는 절차 문제를 넘어 임금피크제 자체의 실체적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고 그 중에서도 차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서 주목할만 하다고 했다.
판단구조
고령자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의4(모집ㆍ채용 등에서의 연령차별 금지)
① 사업주는 다음 각 호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모집ㆍ채용
2.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3. 교육ㆍ훈련
4. 배치ㆍ전보ㆍ승진
5. 퇴직ㆍ해고
이 판결의 논리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로부터 시작된다. 해당 조문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1) 해당 조문이 강행규정인가(강행규정이라면 이에 반하는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은 무효다)
2) 강행규정이라면 위반 여부, 즉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3) 이 사건의 임금피크제가 해당 조문을 위반하는가
이러한 순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먼저 해당 조문이 강행규정인지에 대해서 법원은 연령차별에 대한 구제조치,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 차별에 대한 처벌규정이 존재하고 그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해당 조문은 강행규정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중 이 조문을 위반해서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을 한 내용은 무효가 된다.
그 다음으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연령 차별이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다르게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과 정도가 적정하지 않은 경우라고 말하면서 임금피크제의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여부 등 종합적으로 여러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최종적으로 이 판결에서의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완화 및 실적 달성을 목표로 도입했으면서도 특정 연령 이상 직원들에게만 임금피크제를 적용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 반면에 근로자들의 불이익은 크고 별도의 대상 조치도 하지 않아서 합리적 이유가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주의점
그러나 이 판결에서 당해 사건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부인했다고 해서 이 판결을 다룬 기사들의 헤드라인처럼 모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일률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위에서 보듯이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되어 무효가 되는 경우의 판단 기준을 자세하게 제시하였다. 그 말은 충분히 합리적 이유가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반드시 무효가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 판결이 나온 뒤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0. 20. 선고 2019가합594314 판결은 사건의 임금피크제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임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 이유가 있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고 보아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논거는 다음과 같다.
-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 임금피크제 도입한 것이 단순히 임금비 절감 목적 아니고 청년층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위한 것
-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 정부 정책 상 임금피크제 도입하지 않았으면 그로 인해서 인건비 재원이 동결되는 불이익이 어차피 예상되었음
- 임금 감액의 대상 조치가 있는지와 그 적정성
: 임금을 감액한 대신 추가 유급휴일 부여하여 업무경감 효과를 내고 업무 노하우 전수하는 사내강사 역할 맡김
- 제도 시행으로 생긴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하여 사용
: 절감 재원으로 당초 목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별도 신규 채용을 진행함
결국 2017다292343 판결에서 ‘여러 사정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 이라고 밝혔듯이, 단순히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차별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정 종합한 결과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 효과를 일으키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필연적으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비해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가 적을 수밖에 없으므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합리성이 있는 조치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므로 합리성이 있다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도 유효로 인정될 수 있다.
판결의 예상되는 영향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지 꽤 지난만큼(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는 약 2015년경부터였다) 이 판결과 같이 효력이 없는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아 감액된 급여를 받고도 이미 퇴직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직자 중에서도 감액분만큼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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