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1. 2. 5. 선고 2016다232597 판결
3-1 겨울
3학년 겨울방학이 되어서 민법 정리를 하다 보니 1학년 민법 공부할 때는 없었던 것이 생겼다. 바로 시효완성의 효과 주장 가능한 직접수익자에 해당하지 않는 자에 관한 것이었다. 판례를 보고 생각난 것이 많기도 했고 처음 소멸시효 공부할 때 시효완성 효과에 관해 판례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힘들었었는데 그 생각도 나서 함께 정리해보게 되었다.
소멸시효완성의 효과
민법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소멸시효완성 효과 부분은 막 로스쿨에 들어와 민법 총칙을 배우는 로스쿨생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구간이다. 안그래도 소멸시효 자체가 독자적 성격을 갖기보다는 민법 전 영역에 걸친 권리들의 변동을 다루는 부분이라서 아직 뒷부분의 배우지도 않은 내용까지 소멸시효에서 같이 보느라 지쳤는데 소멸시효 완성 효과 부분에서는 ‘대체 결론이 무엇이고 판례는 무슨 말을 하는가? 라는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길잡이가 될 판례부터가 오락가락 하며 한쪽의 태도를 보이는 듯 하면서 동시에 다른 쪽 견해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복잡한 내용이 더 꼬인다. 초심자인 로스쿨생들이 고통받을만하다. 소멸시효는 판례도 엄청 많은데 어떻게 이 중요한 부분을 정리해두지 않고 소멸시효 관련 판결을 내리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후술하겠지만 어쩌다보니 적당히 굴러가기 때문에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소멸시효의 완성 효과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해석에 다툼이 있는 것이다. 소멸시효 제도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오래 두면 그 권리는 사라진다는 것인데 위에서 보듯이 민법 제162조는 그저 시효기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만 규정할 뿐 완성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즉 완성으로 권리가 즉시 소멸하는지 아니면 권리를 소멸시킬 또 다른 권리가 주어지는지 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완성으로 인한 효과에 관해 1)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당연히 소멸한다는 절대적 소멸설과 2)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당연 소멸은 아니고 권리 소멸을 주장할 권리가 생긴다는 상대적 소멸설이 대립한다.
이 둘은 법조문의 공백에 대한 해석이다.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시효가 완성되면 권리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고 상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시효 완성 후에도 권리가 곧바로 사라지진 않고 소송 등으로 그 권리에 다툼이 있을 때 시효완성을 주장해서 권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즉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권리가 없어지진 않는다. 각 나름의 근거도 있는데, 절대적 소멸설은 시효 원용에 관해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보고, 민법 제369조에서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이유로 소멸한 때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시효가 완성되면 채권은 소멸하는 것이 민법의 규정이라고 본다. 반면 상대적 소멸설의 조문 상 근거는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는 민법 제184조 제1항이다. 반대해석하면 시효이익은 시효 완성 후에는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이미 소멸한 채무에 대해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되므로 포기의 대상이 없게 된다. 이처럼 학설들은 나름 근거를 갖고 부딪히는데 문제는 판례다.
판례는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시효완성 사실로서 채무는 당연히 소멸한다’(65다2445)고 해서 명백히 절대적 소멸설인 것 같아 보이는데 정작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사람은 권리의 소멸에 의해 직접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95다12446)고 보아 상대적 소멸설의 요소도 보여준다. 왜냐하면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누구나 소멸시효 안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례가 시효완성의 효과에 관해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는데도 문제가 없는 것은 민사소송에서는 변론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론주의에 의해 민사소송의 법원은 주요사실에 관해 당사자가 주장한 것으로만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
-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권리가 소멸했어도 당사자가 이를 주장하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다
- 상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당사자가 원용해야 권리가 소멸하므로 원용하지 않으면 판단할 수 없다.
즉 결론에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권리 소멸에는 소급효까지 있으니 별 문제 없이 굴러가므로 시효완성 효과에 관해 정리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여튼 여기까지가 첫 공부 당시 이해되지 않던 해결되지 않는 시효완성의 효과 부분이다.
후순위담보권자의 직접수익자 여부를 다루는 판례
위에서 본 95다12446 판례에서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사람은 권리의 소멸에 의해 직접 이익을 받을 사람(이하 직접수익자)에 한정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는 판례의 핵심이다. 판례 태도가 시효 원용한 자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시효 완성 원용 가능한 자인 직접수익자인 자와 직접수익자 아닌 자를 잘 분류해 기억하는 것이 수험적으로 중요하다.(직접수익자는 응소와 시효중단에서의 ‘채무자’와도 엮여 로스쿨생들을 괴롭힌다.) 지금 다루는 판례는 2021. 2. 5.에 선고되었어서 로스쿨 입학 전 내가 샀던 기본서에는 없었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사안>
변제자대위로 담보가등기권을 취득한 선순위담보권자인 원고는 후순위담보권자인 피고의 근저당권에 기한 경매절차에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했고, 이 때 피고가 항변으로 원고 담보권의 피담보채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다.
<판결요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 후순위 담보권자는 선순위 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담보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담보권의 순위 상승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후순위 담보권자는 선순위 담보권의 피담보채권 소멸로 직접 이익을 받는 자에 해당하지 않아 선순위 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21. 2. 5. 선고 2016다232597 판결
판례 요지의 적용 범위
사실 수험적으로는 직접수익자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하나 더 추가된 것 정도고 판결요지만 보면 되는 것이긴 한데 판결요지에서의 ‘반사적 이익’이라는 부분에 꽂힌다. 물론 이 사안은 원고가 배당이의를 하고 피고가 항변으로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배당 문제에서의 이익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담보권의 대표적인 예시인 저당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까. 선순위저당권이 있고 후순위저당권이 있으면 후순위저당권자도 틀림없이 후순위담보권자일테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판례사안과 다르게 선순위저당권자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완성을 다투는 후순위저당권자 사안은 판례까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판례요지만 보아서는 자연스레 선후순위 저당권자 간의 다툼인 줄 알았지 판례사안 같은 경우인 줄 몰랐었다. 판례원문을 찾아본 것이 다행인 일이려나.
여튼 내가 구상한 선후순위 저당권자 사안에서도 판례법리가 적용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배당문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판례의 논리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여도 후순위담보권자의 1) 담보권의 순위 상승 2) 그에 따른 배당액 증가 가능성은 반사적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후순위 저당권자의 다툼의 경우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선순위저당권자의 피담보채무가 시효완성으로 소멸하면 민법 제369조에 의해 선순위저당권도 소멸하는데, 이 때 후순위 저당권자의 순위 상승은 명백히 법적 이익이다.
민법 제369조(부종성)
저당권으로 담보한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사유로 인하여 소멸한 때에는 저당권도 소멸한다.
물론 후순위저당권자의 순위 상승에 따라 경매 시 배당액이 증가하는 부분은 판례의 말처럼 반사적 이익일 수도 있겠으나 선순위담보권 소멸에 따른 자신의 담보권 순위 상승은 직접 이익이라 봐야 할 것이다. 판례는 담보물의 제3취득자는 시효완성 효과 주장 가능한 직접수익자라고 보는데(95다12446) 두 경우 모두 자기보다 앞서는 담보물권에 의해 자신의 물권이 제한받고 있는 상황이라 유사하다. 그렇다면 둘의 이익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명시적 판례는 없다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후순위저당권자가 선순위저당권자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완성을 주장하면 선순위저당권도 소멸시켜 자신의 담보권 순위 상승이라는 이익이 있기에 직접수익자에 해당하지 않을까.
결론
이 최신 판례는 배당문제라는 특수한 상황에 관한 것이고 내가 위에서 생각한 것처럼 선후순위 저당권자 사이의 다툼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반대의 결론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험적으로도 시효완성 원용 가능한 직접 수익자 목록에 단순히‘후순위담보권자가 선순위담보권자의 피담보채권 시효소멸 주장하는 경우’라고 정리해서는 안 되겠다.
사족
직접수익자로 인정되는 경우
채무자, 보증인/물상보증인, 담보물의 제3취득자, 유치권 성립된 부동산의 매수인, 사해행위 취소소송의 수익자
직접수익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채무자의 일반 채권자, 채권자대위소송의 제3채무자가 피보전채권에 관해 주장하는 경우, 이 판례의 배당 상황에서 후순위담보권자가 선순위담보권자의 피담보채권에 관해 주장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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