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CBT 변호사시험 모의고사 후기

Glox 2023. 7. 1. 20:58

6월 모의고사를 쳤다. 6월 모의고사 시험 자체에도 여러 기억이 남았지만 변호사시험에 CBT 방식이 도입되는데 미리 체험해본 경험이 더 유니크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변호사시험(모의) CBT 응시 후기다.

2024년 변호사시험부터 현재 수기 방식에서 CBT 방식으로 바뀌는데 우리 학교가 시범으로 6월부터 시도해보기로 한 3개 학교여서 CBT 방식으로 6월 모의고사를 응시했다. 덕분에 빨리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그 후기다. 시험이다보니 폰을 안 들고 들어가서 사진은 하나도 못 찍었다. 아쉽게도 글로 된 후기.

1.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졌다.
글씨도 예쁘지 않고 손이 느려서 CBT 도입을 바라긴 했지만 당연히 우리 대에 도입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년 말인가 급진전되더니 2024년 도입이 확정되었고 법무부에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공지했다. 너무 급속히 진행된 일이라 사실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업에서 정부가 만드는 것에 불신이 크기도 하고. 다들 예상하기로는 타자 입력 가능한 메모장 수준에 실시간 연결만 해놓은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서 놀랐다. 신기한게 UI도 깔끔했다. 디자인은 애초에 기대한 바도 없었고 기능이 잘 작동하기만 바랐는데 깜짝 놀랐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은
1) 시험장에 입장하고 나서 프로그램이 작동되고 수험번호가 이름, 생년월일로 로그인을 해야 한다. 로그인 하고 나면 시험 응시 안내 및 프로그램 안내가 나오는데 노트북의 타자 키가 정상인지 확인하는 창도 있고 실제 답안지와 같은 환경에서 작성 테스트해보는 창도 있다. 타자 키 확인 창이 나왔을 때 충격이었다. 날림으로 만든 것 아니고 상당히 잘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 안내창들을 지나고 나면 최종적으로 버튼을 눌러 ‘대기’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시험 시작 전까지 ‘대기’ 상태가 되어 있어야 응시가 가능하다.

2) 시간 관련으로 꼼꼼하게 알려준다. 시험 시작 10초 전부터는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표시되고, 시험 중에는 우측 상단에 ‘남은 시간 분:초’ 로 알려준다. 10분 남았을 때는 화면에 표시된다.

3) 답안지는 1문, 2문, 3문(민사법) 별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문 마다 분량제한이 있다. 우측에 몇 문의 몇 페이지까지 썼는지 표시된다. 2문에서 분량이 남는다고 1문에 그 분량을 쓸 수 없다. 분량을 넘어가면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알림이 뜬다. 이번 민사례 1문 문제 분절되고 쟁점 너무 많아서 쓰다보니 분량을 초과해버렸다. 처음엔 더 이상 안 써지길래 오류인줄 알았는데 1문의 6페이지를 다 썼더라. 그래서 올라가서 목차에서 띄워놓은 줄들 다시 지웠다. CBT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기 답안지와 다르게 지금 내가 몇 페이지까지 썼는지 시각적으로 잘 안 와닿아서 멍하고 쓰면 분량 배분 꼬일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상으로는 한 줄에 꽤 많은 글자 수가 들어갔던 것 같다.

4) 각종 편의기능도 제공한다. 답안지 상단에는 되돌리기, 다시 실행, 복사, 붙여넣기 버튼 및 정렬, 페이지 확대 축소 기능이 있다. 이상하게 복사 붙여넣기는 지원하는데 잘라내기가 안 됐다. 좌측에는 현재 몇 줄 째인지 작은 글씨로 표시가 되는데 모든 줄에 표시되는 것은 아니고 일정 간격으로 표시된다. 처음에는 5의 배수마다 표시되는 줄 알았는데 시험 중간의 기억으로는 5배수가 아닌 숫자도 본 것 같았다. 

5) 법학 답안지에서는 목차를 위한 로마자나 원문자, 갑을병정 등의 한자를 쓸 일이 있는데 문자표 기능으로 지원한다. 한글처럼 특수문자 입력 창을 열어서 한 것은 아니고 문자표 버튼을 누르면 우측에 문자표가 뜬다. 한번 누르면 우측에 있으니 나는 시험 시작하자마자 켜고 내내 사용했다. 문자표에는 모든 특수문자가 있는 건 아니었고 로마자 대소문자와 원문자가 있었고 한자는 갑을병정무기경 까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클릭으로 입력하는 거라 한창 타자 치고 있는 중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목차나 순서에 필요한 경우에는 미리 Ⅰ Ⅱ Ⅲ Ⅳ Ⅴ 한번에 클릭해놓고 써내려갔고 갑을병정 등은 그냥 한글로 썼다. 

6) 응시 중 프로그램 이상 가능성 걱정은 있다. CBT 대신 수기 작성 유지론의 근거기도 했다. 인생이 걸린 시험인데 갑자기 프로그램 오류나서 시험 망치면 그 피해가 막대할 테니. 다만 말했듯이 프로그램이 날림은 아닌 것 같았고 인터넷 연결도 와이파이가 아니라 랜선으로 하도록 되어 있어서 네트워크 오류 가능성도 낮은 편이긴 하다. 시험 중간에 다른 사람이 이상 때문에 조치하는 것 봤던 것 같긴 한데 시험 이후 다른 말이 안 나온 것으로 봐서 심각한 오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2. 모니터로 보는 것은 답안 뿐이다.
객관식은 이전과 동일하게 종이로 된 문제지를 배부하고 OMR 카드에 기입하는 방식이다. 사례형은 문제를 종이로 배부하고, 기록형은 문제를 종이로 배부하고 A4 메모지를 준다. 법전은 실물 법전이 지급된다. 즉 모니터에 있는 것은 답안지 뿐이고 문제와 법전은 이전과 동일하게 실물이다. 개인적으로 모니터로 뭔가 읽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문제도 모니터로 제공되면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다행히 문제도 모니터로 보진 않았다.

그런데 수기와 다르게 노트북도 놓고 종이 문제지도 봐야하고 법전도 봐야하다 보니 책상 공간이 좀 부족했다. 수기야 답안지가 종이니까 답안지를 겹치게 깔고 문제지에서 문제 풀고 개요 잡고 그 부분만 보면서 답안지에 옮겨도 되었지만 노트북 위에 문제지 올리고 풀 수는 없어서 공간이 불편했다.

3. 시간 문제가 덜해졌고 수정 가능한 이점이 크다.
손이 빠르지 않은 편이어서 내신 시험 때 항상 마지막에는 너무 억울하게 끝냈다. 머리 속에 관련 내용이 더 있는데 간략하게 쓰고 마지막에는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나 CBT 타자로 치게 되면서 답안 기입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어서 시간이 여유롭진 않아도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은 덜 들었다.

또 수기와 다르게 수정이 가능해서 중간에 문구나 요건 하나가 생각이 안 나면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고 다시 쓸 수 있어서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이전에는 쓰다 보니 쟁점이 새로 눈에 보이거나 답안 구조를 바꾸어야 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수정이 가능해서 즉시 바꿀 수 있었다. 

4. 메모나 풀이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나는 답안 작성만 타자로 할 뿐 문제 풀이 방식은 기존 방식 그대로 했다. 즉 처음에는 문제지만 보고 사실 파악, 쟁점 도출, 목차 구성, 개요 짜기 한 후 그걸 보고 답안지에 옮겼다. 기록형에서도 기존의 메모법에 따라서 메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답안지에 썼다. 

그런데 동기들 얘기를 들어보니 문제지는 읽기만 하고 나머지는 답안지를 이용한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답안지는 수정 가능하니 답안지를 메모지처럼 쓴 것이다. 문제 읽으면서 쟁점이 생각나는데로 타자쳐서 일정 구역에다가 적어놓고 그걸 보면서 구체적인 답안지로 바꾸는 것이다. 가장 큰 것이 기록형이었는데 아예 메모지를 안 썼다는 사람도 있다. 기록 읽어가면서 보이는대로 답안지에 메모하고 법령이나 기록 읽어서 살 붙여가면서 개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전체적인 조망을 해야 쟁점이 잘 보이는 편이라 원래 하던 대로 메모지에 메모 했는데 답안지에 메모하는 것이 시간 단축할 수는 있을 것 같다.

5. 체력적으로 훨씬 낫다.
변호사시험 민사법 사례형 시험 시간이 3시간 30분이다. 그 시간이면 그냥 문제만 읽어도 지치는데 수기로 답안 작성하면 손이 너무 아프고 체력이 뚝뚝 떨어진다. CBT로 답안 작성해보니 긴장감으로 인한 피로는 있지만 재판실무 과목이나 내신 시험에서 겪은 수준의 피로감까지는 아니었다. 수험생들을 위해서라도 CBT는 확실히 가치 있었다.


종합
왜 진작 안 했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손이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라서 시험 칠 때 늘 억울했다. 문제를 풀어놓고도 답안 작성을 완전히 못 한다니. 물론 다들 억울했을 것이다. 다들 시간이 촉박하니까. 물론 노력하면 손글씨 속도가 빨라지긴 하겠지만 그것이 변호사로서의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인가. 광고에 ‘변호사 OOO 손글씨 빠름’이라고 적힐 일도 없는데. 즉 시험이 검정해야 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역량인데 그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는 그 외의 역량의 역량이 커서 일종의 시험 자원 낭비가 발생한다. 그리고 1,2시간 분량이면 모를까 이 긴 분량을 수기로 빠른 시간 내에 써야 하는 건 수험생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너무 심하다. 

즉 기존 수기 방식에 시험 자원 낭비 + 신체적 고통의 문제가 있었는데 CBT가 많이 해소해주긴 했다. 물론 CBT가 도입되면서 다른 수험적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기존의 문제점이 많이 해결된 것은 맞다. 적어도 시험의 본 취지를 더 살릴 수 있는 방향이다. 답안 작성 시간이 줄어들면서 문제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 여름방학동안 빈 부분 정리하면서 8월 모의고사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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