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는 현실적으로도 논란이 많고 그 허용 여부와 근거에 대해서도 분명히 법이론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 많다. 현실의 제도로서 사형제가 폐지되는 것과 별개로 아무래도 법이론적으로 사형제에 관한 논쟁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 중에 마치 절충설처럼 ‘증거가 확실한 범죄자만 사형하자’는 주장도 있다. 사형죄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오판의 위험성이 있고 사형으로 빼앗은 생명은 다시 복구할 수 없으니 CCTV, 물증, 자백 등으로 오판의 여지가 거의 없을 때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사형제를 유지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을 넘어 형사법의 근본원칙에 어긋나는 편법게 가깝다고 본다.
형벌이란 무엇인가? 과거의 행위에 대한 처벌이다. 이 때 형벌은 ‘범죄의 경중’ 즉 죄가 무겁고 가벼운 정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악한 범죄일수록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고 덜 악한 범죄는 가벼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명제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동일한 범죄는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의 증명 정도가 다른 것은 범죄의 무겁고 가벼운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어디까지나 소송절차 상의 우연한 문제에 불과하다. 동일하게 악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원칙적으로는’ 동일한 형이 선고되어야 한다. ‘원칙적’인 이유는 각종 양형사유가 붙어 최종 선고형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양형사유가 있으니 범죄의 증명 정도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는가 한다면 양형사유는 범죄의 악한 정도, 즉 불법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가중 양형사유에는 피해액, 피해 정도 등 범죄의 중한 정도를 달리하게 하는 것들이 있고 감경 양형사유에는 참작의 요소로 범죄 중한 정도를 낮추는 것 외에 피해자와의 합의 또한 사후적으로나마 피해를 회복하여 불법성의 정도를 낮추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증명의 확실성은 이 불법성의 가감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요소이다. 증명의 확실성이 어떠하든 범죄의 중함은 그대로이다. 이런 이유를 둘째치고서라도 증명의 확실성은 더욱 더 큰 원리에 반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②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유죄 선고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할 수 있다. 범죄 증명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유죄의 가능성이 높아보여도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유죄인 것 같은데 증명이 조금 부족한 것 같으니 양형을 낮게 선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형 논의로 이어가면, 사형 선고는 사형에 해당할 정도로 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선고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정도로 중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낮은 형벌을 선고하는 것이며, 증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사형은 너무하고 징역을 주자’고 할 것이 아니라 증명의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증명의 확실성을 양형의 사유로 삼는다면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의 원칙은 형식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절충론이 나온 것은 사형 선고는 하나 집행하지 않는 현실의 괴리로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경우였다면 증명의 확실성은 유무죄를 가르는 요소였을 것이다. 사형을 선고할만한 일인데 확실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일단 선고하고 집행은 보류해두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증거가 확실한 때에만 사형을 선고하자는 절충론도 법원칙 상 문제점이 있다면 사형제의 반대 근거 중 하나였던 ‘오판의 가능성’을 보완하기는 어려워지는 일이다. 오판의 가능성은 여전히 문제가 되었을테니 사형제 폐지 쪽에 좀 더 힘이 실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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