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꽤나 예전부터 봤던 짤인데 변호사가 되어서 이 글을 쓰니 감회가 새롭다. ‘의외로 주민센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녔던 것인데 ‘부활하면 주민센터에 신고해야 하는거냐’ 같은 반응이 절반, 그리고 ‘이건 인감 부활이다’라고 지적한 것이 절반 정도 되었다.
그렇다. 이건 부활 표시 앞에 떡하니 ‘인감’ 부활이라고 써있는데, 짤이 올라올 때마다 부활 가능한거냐는 반응이 있어서 정말 신기했다. 어쩌면 인감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인감을 대충 인간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고.
인감이란 대조하여 당사자의 동일성이나 진부(眞否)를 확인하기 위하여 미리 관공서 또는 거래처 등에 제출해 두는 특정한 인영(印影)(출처 두산백과)이다. 개인이 미리 행정청에 ‘이런 모양을 한 도장은 내 도장이다’라고 신고해둔 도장을 의미한다.
원래 대부분의 계약은 구두만으로도, 계약서를 만들지 않아도, 인감도장을 찍지 않아도 성립한다. 당사자 사이의 의사합치만으로도 성립하는 계약을 낙성계약이라 하고, 계약 성립에 있어 특정한 형식이나 행위를 요하지 않는 것을 불요식계약이라 한다. 민법상 전형계약은 1가지(현상광고) 제외하고 낙성계약이고, 현상광고도 포함해서 모두 불요식계약이다. 즉 밥 먹다가 ‘내 시계 살래?’라고 물어서 ‘그래 살게.’ 하면 매매계약이 성립한다. 계약서를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분쟁이 생긴다면 그런 의사합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상대방 측에서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하면 사실상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증명이 어려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계약서를 쓰고 서명도 하고 도장도 찍는 것이다.
그런데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도장이 찍혀 있어도 도장 주인이 ‘그거 내 도장 아니다’라고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도장 자체야 도장집 가서 그 사람 이름 주면 팔 수 있기 때문에 작정하면 남의 이름이 적힌 도장을 무단으로 찍을 수 있다.(물론 형사처벌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또 그 찍힌 도장이 상대방의 도장이 맞는지 입증하는 다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감이 중요하다. 인감은 미리 이런 모양으로 찍히는 도장은 자신의 도장이라고 신고한 것이기 때문에 문서에 그 모양대로 도장이 찍혀 있으면 그 사람의 도장이라고 쉽게 파악 가능하다. 그렇게 문서에 찍힌 도장이 그 사람의 도장이란 것이 입증되면 그 사람이 그 도장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고, 이에 따라 그 문서도 그 사람의 의사에 기해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소위 2단의 추정) 그렇기 때문에 인감은 거래의 안정성을 위해 국가에서 관리하는 제도이고, 당사자 의사가 중요한 몇몇 행위에서는 반드시 인감을 요구하기도 한다.(상속포기 등) 제3자가 인감도장을 무단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울테니.
변호사로 일하고 초반에 인감 관련한 일이 있어서 열심히 리서치했는데 인감 관련 글을 쓰다니 감회가 새롭다.
2.
인감증명법
제11조(인감의 말소 및 부활)
① 인감대장을 관리하는 증명청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직권으로 그 인감을 말소할 수 있다.
1. 인감을 신고한 사람의 사망이 분명한 때
2. 인감을 신고한 사람의 실종선고가 있은 것을 안 때
② 제1항의 증명청은 인감을 신고한 사람이 신고한 인감의 말소를 신청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인감을 말소할 수 있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라 신고인감이 말소된 사람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증명청에 말소된 신고인감의 부활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그 신청한 날에 말소된 신고인감을 다시 신고한 것으로 본다.
그럼 인감이 왜 부활하는가? 인감은 국가에서 관리하는데, 더 이상 그 인감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신고된 인감으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인감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인감을 말소할 수 있다. 인감도장의 주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물론이고, 실종선고를 받은 경우에도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도 인감도장을 분실해서 피해를 막기 위해 할 수도 있고(이 경우엔 보통 인감변경신고를 한다), 사실 본인이 말소시키고 싶으면 말소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감을 말소시켰는데 다시 그 인감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짤에 있는 것처럼 실종신고 되었는데 실종자가 돌아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말소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인감이 말소되어 있으니 다시 살려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이 아니라 인감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감 부활 신청서의 정체다.
3.
민법
제29조(실종선고의 취소)
①실종자의 생존한 사실 또는 전조의 규정과 상이한 때에 사망한 사실의 증명이 있으면 법원은 본인, 이해관계인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실종선고를 취소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종선고후 그 취소전에 선의로 한 행위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짤에서 나온 것처럼 실종선고 받은 실종자가 살아 돌아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왔으니 부활 신청을 하는 것일까? 민법상 실종제도는 실종선고 받은 자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사망한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사망하였는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실종된 사람이 돌아와도 그 사람이 실제로 사망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다. 단지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이므로 ‘부활’할 수는 없고 실종선고의 취소 절차를 거치게 된다. 죽은 적이 없는데 부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종선고를 통해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므로 이를 취소하면 소급하여 실종선고의 효과가 사라진다.
즉 실종되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도 부활 신청 안 한다. 실종선고의 취소를 청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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