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챗GPT로 법철학 하기

Glox 2023. 3. 20. 19:49

특징

챗GPT로 여러 실험을 해보았다. 법률실무에 써먹을 방법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아무 진지한 헛소리를 시켜보도록 해서 놀고, 각종 설정의 시나리오와 소설도 작성해 봤다. 아직까지 한국어 3.5기준으로 특징은 '그럴듯함'이다. 대화 내용의 생성방식은 그럴듯함인듯 하다. 내용의 그럴듯함이 아니라 말의 그럴듯함이다. 정합성을 내적으로 모순 없게 전개하는 내적 정합성과 대화와 외부의 사실을 비교해서 말의 진위를 가리는 외적 정합성으로 나눈다면 내적 정합성은 훌륭하나 외적 정합성은 많이 떨어진다. 챗GPT는 특정 일을 수행하기 위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연어 인공지능인 것이다. 그러니까 대화(Chat)를 나누는 인공지능으로서는 좋은 것 같다.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아마도 대화를 생성하는 방식은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생성한 단어와 어절 다음에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한 값을 갖는 단어와 어절을 배치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다른 특징은 일반론적이란 것이다. 뭔가를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것 같지만 잘 보면 깊이 있는 내용은 잘 없고 어디에나 적용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그럴듯하게 한다.(물론 고품질 대답을 얻기 위해 구체적인 상황설정과 정보를 미리 제시하고 질문하는 기술, Prompt라고 불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방법이니까.) 그래서 내 상황을 잘 진단하고 파악해 곧바로 적용하기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준다기보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을 체크하는 느낌이다. 프로그래밍 업계에서는 챗GPT의 코딩능력이 화제가 되었는데 챗GPT가 짜주는 코드가 너무 일반적인 코드라 보안에 취약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물론 단순작업을 경감해주는 효과는 있을듯 하다. 

 

이런 단점도 있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인간은 잊고 있거나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연결하지 못하던 것들을 챗GPT와의 대화 도중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가능해보인다. 즉 아이디어 자극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치 신탁을 해석하는 것 같은데, 이래서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한 것인가. 그래서 각종 법철학적 주제들을 던져 챗GPT가 제시하는 신선한 관점이나 아이디어를 보고자 했다. 

 

 

법철학 하기

질문은 난제인 '형벌의 이유'다. 예전에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이 인상깊었다. 범죄는 인간이 일으키는 이상현상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제대로 작동을 안 하면 이를 수리할 뿐 컴퓨터를 벌하지 않는데, 왜 인간은 수리하는 대신 벌을 주는가?' 대답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 미리 법철학 교수의 역할을 하도록 설정하고 논증에 관한 구조도 설정했다.

 

그럼에도 명쾌하고 신선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일반론적인 대답을 길게 늘였다. 그래도 한 구절은 내 이목을 끌고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 '법은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는 구절이었다. 일반론적인 얘기에 끌려나온 서술이었지만 내게는 '현실의 법은 논리로만 구성된 구성물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이고, 복합적 요소가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논리필연적인 인과적 설명을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들렸다.

 

법해석학은 엄격한 논리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전제로부터 시작해 연역적인 결론을 낸다. 그렇다면 형벌이 범죄를 예방하지 못하거나 교화의 효과가 없다면 형벌의 존립근거는 취약해진다. 형벌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형벌을 행해야 할 논리필연적 근거는 없다.(위에서 말한 인간의 수리 문제이다.) 그러나 형벌도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사회적 제도라면 마치 방안의 코끼리처럼 명시적으로 입에 올리진 않지만 나름의 기능을 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게 된다.

 

법은 허공에서 누군가가 논리적으로 완성시켜 만든 것이 아니다. 인간의 당연한 생활과 감정이 사회적 행위로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형벌은 복수이자 응보감정의 해소 역할도 했을 것이다.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피해자의 응보감정. 명백히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는데 가해자는 고장난 것 뿐이고, 피해의 배상을 했으니 합리적으로 이젠 끝났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나쁜 짓은 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감정이다. 또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게 놔두면 신뢰가 무너지고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유지의 이익을 계속 얻기 위해서 형벌로 위협해서라도 범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위하력) 그 외에도 관련된 인간의 감정들이 있다. 이 요소들은 논리적으로 비판받지 않고 형벌의 근거를 설명하기는 부적합하다. 그러나 분명히 제도로서 형벌제도와 법의 일부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대충 모아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제도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난제를 명쾌히 설명하기 위한 것 오히려 결론을 분산시킨 결과가 되긴 했지만 잠깐 나쁘지 않은 사색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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