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인 것 같은 피고인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게 풀어주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열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다. 사람들은 단지 법을 잘 몰라서 잘못 화내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유죄의 증명이 불충분하고 워낙 사안이 팽팽한 경우 아무리 피고인이 의심스러워도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법부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만큼이나 유죄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피해자와 수사기관의 증명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죄로 풀어주는 것보다도 제시된 이유가 석연치 않고 심지어 심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낄 때 크게 분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단순히 정답을 제대로 못 맞춘 문제가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는 개인의 사적 제재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스스로가 폭력을 독점했다.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만큼 이를 제대로 쓸 책임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권한은 원래부터 자신에게 있던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억울한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쉽게 대원칙으로 도피해버린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가져가서는 소홀히 다루고 버리는 것을 보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판사들이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밤새 기록을 읽으며 노력하고 있을 것이고 절대 자신의 권한을 쉽게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리와는 별개로 사실인정이 논란이 되는 판결은 존재한다. 실체적 진체적 발견을 위해 정진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남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기 때문이란 걸 상기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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