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1조(청각 및 언어 장애인)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한다.
나는 왜 수험과 관계 없으면서 추상적이지만 이론을 명확히 적용해나가는 것에 흥미가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MBTI의 타당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확실히 N인 것은 맞나보다. 그래도 하루 7~8시간 넘어가는 수험 공부 중에 이런 생각 간간히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내 뇌가 갇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가끔 룸메랑도 이런 주제로 얘기 나누면 흥미롭다. 형법 제11조는 수험과 관련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객관식의 지문으로라도 봤던가? 그리고 내 생각도 좋게 표현하면 이론적 엄밀함 탐구지 나쁘게 말하면 트집잡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도 학술이란 건 이런 식으로 발전해 왔다.
의문은 간단하다. 형법 제11조의 청각 및 언어 장애인 형 감경 규정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법이론의 관점에서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 보인다.
형법 제11조는 책임능력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행위 의미를 인식할 수 없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의 행위는 그것이 위법한 행위라 해도 범죄가 될 수 없고 형벌도 무의미하다. 따라서 이를 책임능력이라고 부르며 책임능력이 없거나 적은 사람의 행위는 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한다. 우리 형법은 행위자의 생물학적 비정상상태를 기초로 하여 사물변별, 의사결정능력이라는 심리적 요소를 통해 책임능력을 결정하고 있다. 문제는 형법 제11조의 규정이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신체 장애의 책임능력 간주 여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형법은 생물학적 비정상상태를 기초로 하고는 있으나, 결국 자기 행위의 의미내용 및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물변별능력, 사물을 변별한 후 자기 행위를 의사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능력에 영향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즉 책임능력의 여부는 정신적 능력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질환 또는 지적장애와 다르게 청각 및 언어 장애는 신체 장애에 해당하며, 청각 및 언어 장애가 있다고 해서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되거나 미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선천적인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언어 발달 또한 약해지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물변별능력 및 의사결정능력이 비장애인과 다를 수 있다. 언어의 학습을 위해서는 성인의 언어모델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언어 사용의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로부터 음성 언어를 학습하고 나서야 문자 언어도 학습할 수 있다. 청각 및 언어 장애인은 이러한 점에서 언어 학습에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처럼 언어 학습 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곧 인지능력의 미약이라고는 볼 수 없다. 언어를 통한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라고 해도 인지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언어라는 적절한 매개체가 부존재해 표준화된 지능검사를 시도해 비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언어 사용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방식으로 인지능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적절한 특수 교육을 받은 청각, 언어 장애인들은 사용 언어만 달라질 뿐 비장애인과 인지능력은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 책임능력은 정신적 능력을 바탕으로 결정하여야 하는데도 형법 제11조는 정신적 능력과 별개인 청각 및 언어 장애를 기준으로 책임능력이 미약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그 적절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오영근 교수님은 아예 이 조항이 청각 및 언어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오해시킬 염려가 있어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조항을 형법 제9조의 형사미성년자 규정처럼 보호의 관점에서 형사정책 목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형사미성년자 역시 만 14세 이하 아이들이 개별적으로는 사물변별능력, 의사결정능력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없음에도 미성년자의 교육과 발달, 보호 등 형사정책적 목적에서 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청각 및 언어장애인 감경 규정도 이와 유사하다. 장애인은 사회적 소수자 지위에 있고 이전 시기에는 더욱 더 불리한 지위에 있었다. 의사소통의 불리함으로 실질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형사정책적 규정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조문의 비정합성
위에서 본 것처럼 감경 규정의 근거 의문은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형사정책적 목적이라고 이해하면 문제는 없다. 사실 이 뒤부터는 트집잡기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형사정책적 목적이라고 해도 조문이 그 취지와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조문이 엄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청각 및 언어 장애가 책임능력과 관계된 정신적 장애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이와 유사하게 불리한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형사정책적 목적으로 감경 규정을 두었을 수 있다. 그런데 청각 및 언어장애로 현실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들은 위 논의에서도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선천적 청각 및 언어장애인이다. 그러나 조문 상으로는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충분히 갖춰진 약 14세 이후에 후천적으로 청각 및 언어장애인이 된 사람도 이 조문의 적용대상이 되며 심지어 ‘필요적’으로 감경된다. 청각장애 뿐 아니라 언어장애 역시 사고 등으로 뇌 손상을 입는 등 후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은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인지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임의적 감경도 아닌 필요적 감경 규정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문언 상으로는 그러하지만 과연 취지를 반영한 결과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 이 규정을 ‘선천적으로 청각 및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문은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뿐이므로 후천적 장애로 인지능력이 있는 사람을 조문 적용에서 배제한다면 피고인에게 불리한 축소해석(96도1167)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문이 취지를 완전히 살리지 못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건 입법 당시 이런 상황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면 해석론의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겠지만 쉽게 상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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