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인 법, 법 관련 토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생명의 중요성, 시민의 연대의무가 찬성 근거가 될 수 있는 반면 법적 불명확성, 과도한 주의의무 부과, 지나친 후견주의적 입장이 반대 근거가 될 수 있어 논할 수 있는 가치가 많다. 로스쿨 면접 준비 때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 관련 양 측의 논거도 공부하고 개인적인 통찰도 해보았다.
대한민국 법에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에 면책조항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하는 형태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관련사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한 응급처치
가. 응급의료종사자
나. 「선원법」 제86조에 따른 선박의 응급처치 담당자,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제10조에 따른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
2.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3. 제1호나목에 따른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에 한 응급처치
그래서 흔히 토론 주제로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없는 것은 맞는데 원래부터 없던 것은 아니고, 있었는데 없어졌다.
없어진 착한 사마리아인법
<일제강점기 형법> (소위 구형법)
제217조[유기] 노유, 불구 또는 질병 때문에 부조를 요할 자를 유기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18조[보호책임자의 유기] ① 노자(老子), 유자(幼者), 불구자 또는 병자를 보호할 책임있는 자가 이를 유기하거나 또는 생존에 필요한 보호를 하지 않는 때에는 3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현행 대한민국 형법>
제271조(유기, 존속유기) ① 나이가 많거나 어림, 질병 그 밖의 사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가 유기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처벌하는 형태의 착한 사마리아인법과 관련이 있는 것은 유기죄인데 현행 대한민국 형법은 유기죄에서 보호의무자, 즉 구조의무를 지는 자를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있는 자'로만 제한하고 있어 단순히 사회상규 상 조리의무를 인정하지는 않는다.(76도3149) 즉 조문에도 보듯이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하고 있어서 단지 긴급상황을 옆에서 지켜봤다는 것으로는 유기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형법 상 착한 사마리아인법과 유사한 조문은 없다.
일제강점기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는 소위 구형법이라고 불리는 조선형사령에 의해 의용된 일본 형법이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 때에는 유기죄의 주체가 현행 형법과 달랐다. 위 조문에서 보듯이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로 한정하지 않고 '유기한 자'라고만 하고 있어 구조의무를 모든 사람을 넓혀놓았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인법에서 말하듯이 누구든 위험에 처한 자를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되는 것이다. 현행 유기죄와 같이 도와야 할 의무 있는 자는 '보호책임자의 유기'로 따로 구성하여 처벌을 더 강하게 했다. 물론 이 때에 '유기'의 해석을 현재와 다르게 한다면 착한 사마리아인법과 달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서 1953년 형법 제정 전까지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기죄가 존재했다.
굳이 없앤 착한 사마리아인법
현행 유기죄가 보호의무 있는 자를 한정하는 것처럼, 원래부터 구조의무를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두는 것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납득하기 쉽다. 애초부터 구조를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고,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아 처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 구형법은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것이기에 우리 사회의 의식과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무언가가 정해지면 특별히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인간 습성이다. 그런데 현행 형법은 있던 죄를 굳이 없앴다. 변화에는 상응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지 일제강점기는 청산하고 우리만의 형법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많은 것을 바꾸었다기엔 1953년 현행 형법은 기존 일본 형법 내용을 상당부분 그대로 옮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 이근 대위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관련해서 사문화된 조항인 '사전죄'가 일본 메이지 형법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죄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의식적으로 유기죄의 구성요건을 변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기게 된다. 내가 형법을 실증적으로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현대보다 이전일수록 도덕범죄가 더 많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사회에서 사회도덕은 집단의 중요 규범이었고 이를 준수하는 것은 때로는 법적으로 강제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도덕범죄의 비범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으로도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등 이전에는 처벌하던 도덕범죄들이 사회와 인식의 변화로 형사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다. 현재도 독립 도덕범죄는 아니지만 살인 및 폭행죄의 가중요건으로 존속살해, 존속폭행죄가 있다. 더 무겁게 처벌하는 근거는 우리 사회의 효 사상인데,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있으니 이 역시 사회변화에 따라 폐지될 수도 있다.
다시 유기죄로 돌아가자면 구조의무 강제, 즉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현대에도 처벌 논의가 나올 정도인데 개인에게 요구되는 집단도덕의 정도가 높았을 예전에 오히려 구조의무를 없앤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당시 집단적 사회에서 구조의무가 당연해서 이를 처벌로 강제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있던 죄를 굳이 바꾼 것과는 맞지 않는다.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 의문이지만 형법의 도덕범죄 비범죄화 경향을 한번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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