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형법상 폭행의 개념' 통설에 관한 생각

Glox 2023. 1. 15. 23:06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①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폭행'이라고 하면 형법 제260조의 폭행죄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형법에는 폭행죄 외에 다른 조문에도 폭행이란 단어가 나타난다. 주로 폭행을 수단으로 하는 죄들이다. 공무집행 방해, 강요죄, 강간죄 이런 죄들 말이다. 이 죄들의 조문에는 '폭행'이라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지만 그 뜻은 각기 다르다. 각 죄가 요구하는 행위태양과 보호 법익이 조금씩 다른데도 추상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법조문의 한계인 것이고 이에 따라 해석론이 붙은 것이다.

 

보통 로스쿨 1학년 2학기 때 형법 각론을 배우고, 형법 각론 시간에는 '형법상 폭행의 개념'을 통설에 따라 공부한다. 아마 형법 각론을 배운 사람이라면 다 본 적 있는 학설일 것이다. 통설에서는 형법상 폭행 개념을 최광의, 광의, 협의, 최협의로 나눈다.

 

최광의의 폭행은 '일체의 유형력 행사'를 말하는 넓은 개념이다. 소요죄(제115조), 다중불해산죄(제116조) 같은 잘 볼 일 없는 죄들이다.

 

광의의 폭행은 '사람에 대한 직간접 유형력의 행사'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이 공무집행방해죄(제136조)의 폭행이다. 광의의 폭행은 반드시 사람의 신체에 대한 것일 필요가 없으므로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 앞에서 벽을 쾅 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면 폭행죄(제260조)의 폭행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공무집행방해죄의 폭행에는 해당한다는 것이 형법 사례에서 흔하게 나오는 쟁점이다. 

 

협의의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이다. 이것이 폭행죄의 폭행이다. 단,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유형력의 행사'이므로 폭행이 꼭 사람의 신체에 맞지 않아도 성립한다.

 

최협의의 폭행은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를 의미한다. 강도죄(제333조)와 강간죄(제297조)의 폭행이 이에 해당한다.

 


문득 든 의문점

 

사실 배울 당시에는 형법 각론에 쫓겨 공부하기 바쁘기도 했고 막연히 '가장 넓은 범위의 폭행에서부터 점점 범위가 좁아지네'라고 생각하며 최광의>광의>협의>최협의라고 이해하면서 강간죄 등을 공부할 때 최협의의 폭행 개념을 은연중에 '(사람에 신체에 대한 것이면서)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라고 채워넣기 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어색한 부분이 생기면서 의문점이 들었는데...

 

최협의 폭행부터 협의 폭행까지는 단계적으로 '유형력 행사 대상'이 축소되고 있는 반면, 최협의 폭행에서는 갑자기 유형력 행사의 대상은 사라지고 기준이 '행사의 정도'가 된다. 앞의 3가지는 '유형력 행사의 대상'이라는 기준으로 포함 관계이지만 최협의의 폭행은 이들과 포함 관계가 아닌데 '최협의'라는 이름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대충 이런 식이 되는 것 아닌가?

광의, 협의 이름이 붙으려면 범위의 넓고 좁음이 기준이 되어야 하므로 서로 포함 관계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에 신체에 대해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셔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협의 안에 최협의가 없는 것인데 맞는 수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전에 이미 구별기준에 일관성이 없지 않은가?

 

사실 이 의문점은 이 판례(91도288)를 베이스로 한 형사 사례문제를 풀다가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관계가 '피고인이 간음할 목적으로 새벽 4시에 여자 혼자 있는 방문 앞에 가서 피해자가 방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갈 듯한 기세로 방문을 두드리고 피해자가 위험을 느끼고 창문에 걸터 앉아 가까이 오면 뛰어 내리겠다고 하는데도 베란다를 통하여 창문으로 침입'이고 강간죄 성부를 묻는 문제에서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 유형력 행사한 바는 없으니 강간죄에서 상대방 항거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 폭행 아니라 강간죄는 부정이고 주거침입죄가 문제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가 문제 틀리고 나서 내가 은연중에 이해하고 있던 최협의의 폭행이 협의의 폭행과 포함관계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은연중에 내가 학설 내용을 오해한 것이고 판례 많이 보고 내용 체크하면 실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름을 최광의~최협의로 붙였다면 자연스럽게 포함관계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왜 이름을 그렇게 붙였고 2개의 기준이 억지로 합쳐진 방식으로 형법상 폭행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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