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교사의 체벌 인식 변화
가끔 옛날 판례를 보다 보면 판례의 표현이나 어구를 보고 예전 사회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위법성 조각 부분에서 교사의 체벌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200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201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사이에도 학교 분위기는 조금 바뀌었다. 옛 괴담처럼 학생들을 구타하거나 뺨을 때리는 선생님을 본 적은 없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는 숙제를 안 해오거나 성적이 너무 낮으면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리는 것 정도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애기들을 때리는 것 자체가 너무 마음 아픈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 때도 이해 안 되었던 건 성적이 낮다고 회초리 때리는 것이었다. 숙제를 안 하거나 질서를 위반하는 것은 책임이라도 있지만 성적이 낮은 걸로 맞아야 한다니?? 여튼 그것도 벌써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고 요즘은 학교에서 체벌하지 않는 듯하다. 사회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지금 당연한 것이 옛날에는 당연하지 않았기에 옛 판례 중에는 충격적인 것들도 있다.
70년대 판례에서는 ‘중학교 교장직무대리자가 훈계의 목적으로 교칙위반학생에게 뺨을 몇차례 때린 정도는 감호교육상의 견지에서 볼 때 징계의 방법으로서 사회 관념상 비난의 대상이 될만큼 사회상규를 벗어난 것으로는 볼 수 없어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해서 ‘학생에게 뺨을 때리는 것’도 훈계가 될 수 있다고 본다.(75도115) 70년대의 학교에서는 교사가 뺨을 때리는 것 정도는 훈계 목적으로 가능하다고 받아들여져 폭행죄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이다.(위법성 조각) 지금이었으면 언론에 대서특필 될 사건이 아니었을까.
다만, 위 판례는 단순히 ‘애들 훈계하는데 뺨 좀 때리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판결한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생각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당시 교육법 상에는 각 학교의 장에게 ‘체벌 권한’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교육법 제76조 각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학생에게 징계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다. 의무교육에서는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다.
물론 뺨 때린 것이 조문 상 ‘처벌’에 포함될 수 있는 정도냐는 법리적 다툼이 있는 영역이겠지만 조문 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충분히 법령상 정당행위로 논리구성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안에서는 교장직무대리자였고, 교사의 경우에는 학교장의 묵시적 위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어 공공연히 체벌이 이루어지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저 처벌권을 규정한 조문은 1949년 교육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던 조문이었는데 1998년 교육법에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가(명시적인 처벌 권한까지도) 1998년 교육법은 교육기본법으로 바뀌었고 징계에 관한 규정은 초중등교육법 제18조로 넘어갔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에서는 ‘처벌 권한’은 사라지게 된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학생의 징계) ①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 다만,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퇴학시킬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
75도115 판례 당시에는 교육법에 처벌 권한이 명시되어 있었으니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로 구성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초중등교육법에서는 ‘징계’의 권한만 규정하고 있고 법령과 학칙이 신체적 폭력을 인정할 것 같진 않은 데다, 민법 상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도 폐지된 때에 정말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가 아니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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