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쓴 사실관계가 독특한 판례들의 해설. 대부분 이론적으로 의미있는데 기억에도 남는 판례들이다.
1. 김밥 콜라 사건
한 조직폭력배들이 적대 관계 조직폭력배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들이 투숙한 여관을 습격했는데, 정작 호실을 착각하여 투숙하고 있던 무고한 일반인인 피해자를 흉기로 구타하였다. 피해자는 심한 외상을 입고 급성신부전증이 생겼으나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일단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급성신부전증의 경우 음식과 수분의 섭취를 철저히 억제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입원 중 깁밥과 콜라를 먹었다가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인 패혈증이 유발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피해자가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은 조직폭력배들의 구타 때문일까? 즉,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살인죄가 인정될까?
정답 :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살인죄가 인정된다.
"살인의 실행행위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하게 한 유일한 원인이거나 직접적인 원인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므로, 살인의 실행행위와 피해자의 사망과의 사이에 다른 사실이 개재되어 그 사실이 치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실이 통상 예견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살인의 실행행위와 피해자의 사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도3612 판결)."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죄가 성립한다. 그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되는데, 판례는 소위 상당인과관계설의 입장에서 한 행위로 인하여 통상적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면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그 사이에 제3의 사실이 개입되어도 인과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본다. 즉,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은 김밥과 콜라를 함부로 먹었기 때문인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 사망이 조직폭력배들의 공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여우고개 사건
A는 중대장의 당번병으로 군복무하는 병사였다. 평소에 중대장의 관사에 머물며 집안일을 돕고 가끔은 관사 밖으로 다녀오는 심부름도 했었다. 어느날 밤 중대장의 아내가 A에게 전화를 걸어 “비가 오고 밤이 늦어 혼자서는 여우고개를 넘어 귀가할 수 없으니 우산 들고 마중나와달라.”라고 하였다. A는 평소와 같은 심부름으로 여기고 관사를 이탈하여 중대장 아내를 모시고 왔는데, 중대장 허가 없는 A의 관사 이탈 행위가 무단이탈, 즉 탈영일까?
정답 : A에게는 무단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소속 중대장의 당번병이 근무시간중은 물론 근무시간 후에도 밤늦게 까지 수시로 영외에 있는 중대장의 관사에 머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그 자녀들을 보살피며 중대장 또는 그 처의 심부름을 관사를 떠나서까지 시키는 일을 해오던 중 사건당일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관사를 지키고 있던중 중대장과 함께 외출나간 그 처로부터 24:00경 비가 오고 밤이 늦어 혼자 귀가할 수 없으니 관사로부터 1.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까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당번병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그 지점까지 나가 동인을 마중하여 그 다음날 01:00경 귀가하였다면 위와 같은 당번병의 관사이탈 행위는 중대장의 직접적인 허가를 받지 아니 하였다 하더라도 당번병으로서의 그 임무범위내에 속하는 일로 오인하고 한 행위로서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없다고 볼 것이다(대법원 1986.10.28. 선고 86도1406 판결)"
이건 위법성 조각사유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라는 복잡한 쟁점이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요약하자면 "A가 중대장 허가 없이 관사를 떠난 것은 무단이탈에 해당하는 행위인데(구성요건해당성), 중대장 아내를 수행하는 것이 업무도 아니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게 원칙이나, 지금까지 그것이 업무라고 오인하였으므로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위법성이 조각되므로 죄가 되진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대충 보아도 어려운 쟁점인 것도 맞고, 학설은 책임의 조각으로 보는데 판례가 위법성 조각으로 판단하여 비판이 많은 판례기도 하다.
3. 저수지 조카 사건
A는 조카인 피해자(10세)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갔다. 조카를 직접 저수지로 밀어버리는 대신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쪽으로 유인해서 함께 걷다가 조카가 미끄려져 물에 빠지자 조카를 구하지 않고 조카가 사망할 때까지 놔두었다. A가 조카를 직접 민 것은 아니고 조카가 스스로 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인데, A에게는 조카에 대한 살인죄가 인정될까?
정답 : 살인죄가 인정된다.
"피고인이 조카인 피해자(10세)를 살해할 것을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함께 걷다가 피해자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호하지 아니하여 피해자를 익사하게 한 것이라면 피해자가 스스로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것이고, 그 당시는 피고인이 살인죄의 예비 단계에 있었을 뿐 아직 실행의 착수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숙부로서 익사의 위험에 대처할 보호능력이 없는 나이 어린 피해자를 익사의 위험이 있는 저수지로 데리고 갔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을 방지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지는 경우 그를 구호하여 주어야 할 법적인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피해자가 물에 빠진 후에 피고인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그를 구호하지 아니한 채 그가 익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방관한 행위(부작위)는 피고인이 그를 직접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형법상 평가될 만한 살인의 실행행위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범죄는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것(작위)으로 저지를 수도 있지만, 행위하지 않음으로써(부작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적극적으로 행위하는 것으로 성립하는 범죄를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저지른 것으로 보는 기준이 무엇인지 문제되는데, 그 요건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을 방지할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행위하지 않는 것이 행위한 것과 같다고 볼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삼촌이라면 조카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심지어 그것이 자기가 저수지로 데려갔기 때문에 더더욱 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저수지로 데려가놓고 물에 빠진 조카를 구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조카를 물에 빠뜨려 죽인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살인죄가 인정된다.
4. 친해지면 응해주겠다 사건
A는 B를 강간하려 하였다. 그러나 B가 ‘다음 번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주겠다’는 취지로 간곡하게 부탁하자 A는 강간 시도를 그만두고 B를 자신의 차에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A에게 강간미수죄가 성립하는 것은 분명한데, A는 자의에 의하여 범죄를 중단한 것일까?
정답 : A는 자의에 의하여 강간을 중단한 것이다(강간의 중지미수)
"범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하고 그 범죄가 완수되기 전에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범죄의 실행행위를 중지한 경우에 그 자의에 의한 중지가 일반사회통념상 장애에 의한 미수라고 보여지는 경우가 아니면 이는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다가 피해자가 다음 번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 주겠다는 취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하여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며, 기록에 의하면 그 후 피고인은 피해자를 자신의 차에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 준 사실이 엿보이는바, 위 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은 자의로 피해자에 대한 강간행위를 중지한 것이고 피해자가 다음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 주겠다는 취지의 간곡한 부탁은 사회통념상 범죄실행에 대한 장애라고 여겨지지는 아니하므로 이 사건 피고인의 행위는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3. 10. 12. 선고 93도1851 판결)."
범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이를 끝내지 못했거나 범죄 결과가 발생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미수라 한다. 사람을 죽일 생각으로 공격했으나 죽지 않았다면 살인미수가 된다. 그런데 그 미수는 범인이 공격을 시작했으나 갑자기 반성하고 스스로 이를 그만둬서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고(중지미수), 피해자가 도망가버려서 혹은 찔러도 죽지는 않아서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다(장애미수).
그런데 중지미수는 형법상 반드시 형을 감면해주어야 하기에 중지미수와 장애미수의 구분이 중요하다. 판례는 스스로 내적인 동기에 의해서 중단한 경우 중지미수라고 보는 입장이지만, 사실 친해지면 응해주겠다 사건 외에는 중지미수를 인정한 주요 판례가 없어서 이 판례가 유명하다.
예를 들어 강간하려다 피해자가 수술한 지 얼마 안되어 배가 아프다면서 애원하자 그만둔 경우(92도917)는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가 아니라고 보았다.
5. '어?'라고만 한 사건
A는 다른 3명을 모아 강도의 모의를 하였다. A는 공모자들을 데리고 삽을 들고 사람을 때리는 시범을 직접 보여주며 강도 모의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정작 강도 범행에 나섰을 때 A가 아닌 다른 공모자들이 갑자기 강도 대상을 지목하고 쫓아가기 시작했고 A는 ‘어?’라고만 하고 비대한 체격 때문에 뒤따라가지 못하고 200m 떨어진 곳에 그냥 앉아 있었다. 다른 공모자들은 피해자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 강도상해가 인정되었는데, 강도행위에는 참여하지 않은 A에게도 강도상해죄가 인정될까?
정답 : A에게도 강도상해죄가 인정된다.
"공모공동정범에 있어서 공모자 중의 1인이 다른 공모자가 실행행위에 이르기 전에 그 공모관계에서 이탈한 때에는 그 이후의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관하여는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할 것이나, 공모관계에서의 이탈은 공모자가 공모에 의하여 담당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공모자가 공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다른 공모자의 실행에 영향을 미친 때에는 범행을 저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실행에 미친 영향력을 제거하지 아니하는 한 공모관계에서 이탈하였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8. 4. 10. 선고 2008도1274 판결)."
일상에서는 같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공범이라 하지만, 법적으로는 '공동정범'이라 한다. 법적으로는 공범은 일반적으로 교사범과 종범(방조범)을 뜻한다(협의의 공범). 같이 범죄를 공모하고 같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사람들 모두 그 범죄의 공동정범이 되는데, 공모만 하고 범죄 저지르기 전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된다.
원칙적으로 공모만 하고 실행행위에 이르기 전에 '나는 안 할래'하고 빠지면(공모관계에서 이탈) 그 후의 범죄에 대해서는 같이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인데, 만약 그 사람이 공모를 주도한 것이라면 그 이후 범죄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지 않는한 일 벌여놓고 혼자 빠진다고 해서 봐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범죄를 같이 저지른 것으로 본다.
다른게 아니라 살쪄서 못 쫓아갔다는 사실관계가 너무 인상에 남는 판례다.
6. 열심히 일을 하라 사건
A는 3인조 절도범들이 물건을 절도해오면 그 장물을 저렴하게 매수해오던 장물아비였다. 그러던 중 함께 다니던 3인조 절도범 중 1명이 체포되었고, A는 나머지 절도범 2명을 만나서 드라이버를 사서 건네주며 “한명이 잡혀서 도망 다니려면 돈도 필요할텐데 열심히 일을 하라.”라고 말하였다. A가 “열심히 일을 하라.”라고 말을 건넨건 절도를 하라는 뜻일까. 즉 A에게 절도교사죄가 성립할까?
정답 : A에게 절도교사죄가 성립한다.
"막연히 “범죄를 하라”거나 “절도를 하라”고 하는 등의 행위만으로는 교사행위가 되기에 부족하다 하겠으나, 타인으로 하여금 일정한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생기게 하는 행위를 하면 되는 것으로서 교사의 수단방법에 제한이 없다 할 것이므로, 교사범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범행의 일시, 장소, 방법 등의 세부적인 사항까지를 특정하여 교사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정범으로 하여금 일정한 범죄의 실행을 결의할 정도에 이르게 하면 교사범이 성립된다(대법원 1991. 5. 14. 선고 91도542 판결)."
교사범은 타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도록 시키는 것인데, 어떤 행위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시키는지는 정범(실행자)로 하여금 일정한 범죄의 실행을 결의할 정도(마음먹게 될 정도)에 이르렀는지가 기준이 된다.
단순히 '절도를 해라'라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지만 A처럼 장물을 매수해오던 사람이 절도범에게 드라이버를 사주면서 열심히 일을 하라는 것은 '예전처럼 절도를 하면 그 물건은 내가 매수해주겠다'는 의미이므로 절도를 교사했다고 보는 것이다.
7. 천지창조 클럽 사건
A는 “천지창조”라는 디스코클럽을 운영중이었는데, 이 디스코클럽에는 대학교 1,2학년들이 많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성년자보호법상 만 20세 미만을 디스코클럽(청소년 유해업소)에 출입시키는 것은 금지되었는데, 20세 미만이어도 대학생이면 사회적으로는 성인이었으니 현장에서는 혼동이 심했다. 경찰에서 개최한 청소년선도 관련 업주회의에서도 이에 대해 확답을 해주지 못했고, 얼마 후 경찰은 “18세 미만자와 고등학생 출입만 단속된다.”고 공문을 보냈고, A는 그 공문을 보고 18세 이상 20세 미만인 대학생들을 출입시켰다. A는 경찰 공문을 보고 했으니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이 아닐까?
정답 : A가 경찰 공문을 믿은 것과 상관없이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죄가 된다.
"형법 제16조에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한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법률의 부지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행위이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이다(대법원 1985. 4. 9. 선고 85도25판결)."
형법 제16조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는데(법률의 착오), 여기서 법률의 착오는 법률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판례, 즉 법률의 부지는 법률의 착오가 아니라는 것이 핵심인 판례다.
법률의 착오에 관한 법리가 중요한 것과 별개로 이 판례가 기억에 남는 것은 '천지창조'라는 클럽 이름이 인상깊은 것과 경찰 공문을 믿고 행위했는데도 그것을 착오의 정당한 이유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 다소 너무하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판례상 법률의 착오가 인정되는 경우는 아주 적은데 허가 담당 공무원이 허가가 필요없다고 잘못 알려주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판례에서 경찰 공문을 믿은 것조차 안된다고 판단하면 형법 제16조의 적용 범위를 너무 좁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이 판례도 법률의 부지를 법률의 착오에서 배제한 것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곤 한다.
8. 삐끼주점 사건
삐끼주점의 지배인인 A는 술에 취한 피해자에게 술을 더 먹이고 신용카드를 빼앗아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종업원들과 그 신용카드에서 돈을 인출해서 갖기로 하고 A는 주점에 남아 피해자를 붙잡아두면서 감시하고 다른 종업원들은 신용카드로 ATM에서 돈을 인출했다. 형법상 2인이상이 합동한 특수절도는 문언상 시간적, 장소적으로 같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같이 돈을 인출한 종업원들 외에 주점에서 피해자를 감시하고 있던 A도 특수절도가 되는 것일까?
정답 : A에게도 특수절도가 인정된다.
"3인 이상의 범인이 합동절도의 범행을 공모한 후 적어도 2인 이상의 범인이 범행 현장에서 시간적, 장소적으로 협동관계를 이루어 절도의 실행행위를 분담하여 절도 범행을 한 경우에는 공동정범의 일반 이론에 비추어 그 공모에는 참여하였으나 현장에서 절도의 실행행위를 직접 분담하지 아니한 다른 범인에 대하여도 그가 현장에서 절도 범행을 실행한 위 2인 이상의 범인의 행위를 자기 의사의 수단으로 하여 합동절도의 범행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범성의 표지를 갖추고 있다고 보여지는 한 그 다른 범인에 대하여 합동절도의 공동정범의 성립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8. 5. 21. 선고 98도321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례는 합동범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A는 일반 절도의 공동정범인지 특수절도의 공동정범이 되는지가 문제되는데, 그 이유는 특수절도를 규정하는 형법 제331조 제2항 후단은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소위 합동절도)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합동절도가 되면 일반절도보다 형이 무거워지는데, 형법상 합동이란 시간적 장소적으로 같이 있을 것을 요한다. 그렇게 시간적 장소적으로 같이 있을 것을 요하는 범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그 합동범의 공동정범이 될 수 있는가? 이 판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9. 웅덩이 질식사 사건
A는 B가 자신의 아내에게 젖을 달라며 아내를 희롱하자 분노하여 B를 죽일 생각으로 돌로 때렸다. B가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A는 B가 죽은 것으로 알고 사체를 숨길 목적으로 개울가에 웅덩이를 파고 B를 묻었다. 그런데 사실 B는 A가 돌로 때려 기절했던 당시에는 살아있었고 A가 B를 웅덩이에 묻으면서 질식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A의 행위는 살인죄일까 아니면 살인미수와 과실치사일까?
정답 : A의 행위는 살인죄가 된다.
"피해자가 피고인들이 살해의 의도로 행한 구타 행위에 의하여 직접 사망한 것이 아니라 죄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행한 매장행위에 의하여 사망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전과정을 개괄적으로 보면 피해자의 살해라는 처음에 예견된 사실이 결국은 실현된 것으로서 피고인들은 살인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대법원 1988.6.28.선고 88도650 판결)."
매우 이론적인 상황의 사실관계다. A의 폭행(제1행위) 당시에는 A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지만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고, A가 B를 파묻을 당시(제2행위)에는 A는 B가 이미 죽은 줄 알아 살인의 고의가 없었는데 A의 행위로 B가 사망했다. 이 제1행위와 제2행위 사이 엄청난 우연이 이론적인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엄격하게 보면 제1행위는 살인미수(살인 고의로 폭행했으나 죽지 않음)이고 제2행위는 과실치사(살인 고의가 없었으나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판례는 1행위와 2행위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면 "죽일 생각으로 때렸고 결국 죽었다"라는 이야기가 되고 중간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에서 하나의 살인죄로 판단하였다.
10. 정신차릴 정도로 때려주라 사건
A는 B를 시켜서 C를 손봐주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B에게 “정신차릴 정도로 때려주라”라고 말하였다. B는 C를 찾아가 구타하였으나 너무 세게 친 나머지 C가 사망하고 말았다. B는 상해치사죄를 범한 것이 되었는데, A는 상해죄의 교사범인가 상해치사죄의 교사범인가? 때리다가 실수로 죽이는 걸 시킬 수 있는 건가?
정답 : A는 상해치사죄의 교사범이 된다
"교사자가 피교사자에 대하여 상해를 교사하였는데 피교사자가 이를 넘어 살인을 실행한 경우, 일반적으로 교사자는 상해죄에 대한 교사범이 되는 것이고, 다만 이 경우 교사자에게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과실 내지 예견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상해치사죄의 교사범으로서의 죄책을 지울 수 있다(대법원 1997. 6. 24. 선고 97도1075 판결)."
교사범은 범죄를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것이다 보니 시킨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럼 시킨 사람에게 어떤 죄가 인정되는지 온갖 경우의 수가 튀어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절도를 교사했는데 강도를 한 경우, 반대로 강도를 교사했는데 절도만 한 경우, 폭행을 교사했는데 강간을 한 경우 등 매우 복잡하다.
거기에 더 넘어서 직접 실행행위를 한 사람이 의도는 없었지만 과실로 더 큰 범죄까지 일으킨다면 어떨까? 이 사건은 A가 B에게 상해를 교사했고, B는 C에게 상해를 입힐 생각이었는데 과실로 C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럼 A는 B에게 무엇을 교사한 것일까? 이 판례는 "B가 실수로 C를 때리다 죽이는 것을 시켰다."라고 보았는데 이것이 납득가능한 것인지는 판단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11. 기절했다 구급차에서 정신을 차렸다 사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불러내어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무려 4시간 동안이나 피해자를 둘러싸고 ‘회칼로 죽여버리겠다’고 하거나 깨진 소주병으로 찌를 것처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해자 중 1명이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목덜미를 몇 번 쳤는데,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였다. 가해자들이 119를 불러 피해자는 구급차 안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어떤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가해자들에게는 상해죄가 인정될까?
정답 : 가해자들에게는 상해죄가 인정된다.
"오랜 시간 동안의 협박과 폭행을 이기지 못하고 실신하여 범인들이 불러온 구급차 안에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면, 외부적으로 어떤 상처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생리적 기능에 훼손을 입어 신체에 대한 상해가 있었다고 본 사례(대법원 1996. 12. 10. 선고 96도2529 판결)."
상해라고 하면 상처가 나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판례는 상해의 개념을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해석되는 편이다(더 정확히는 개별 사건마다 구체적 타당성을 따져 판단하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실제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해도, 실신한다는 것도 생리적 기능이 훼손되는 것이므로 상해에 해당할 수 있다.
12. 차를 조금씩 전진 사건
A와 B는 부부였으나 갈등을 겪고 이혼하였다. 어느 날 A와 B가 만나 이야기하다 다투게 되었고 A는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B가 A의 차 앞으로 뛰어들어 가로막았다. B가 비키지 않자 A는 B를 향해 차를 조금씩 전진시키고 B가 뒤로 물러나면 또 그만큼 차를 전진시키는 것을 반복했는데, B를 차로 친 것은 아니었다. A가 B를 향해 차를 전진시킨 것은 차를 이용한 폭행죄일까?
정답 : 폭행죄에 해당한다.
"자신의 차를 가로막는 피해자를 부딪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부딪칠 듯이 차를 조금씩 전진시키는 것을 반복하는 행위 역시 피해자에 대해 위법한 유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도9302 판결)"
폭행이 꼭 때리는 것만은 아니다. 형법상 폭행은 여러 개념이 있지만(참조), 폭행죄에서의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 즉 사람의 신체를 향해 힘이 전달되면 되는 것이다. A가 차로 B를 직접 친 것은 아니지만 A가 B를 향해 차를 전진시켰고 B가 뒤로 물러난 것은 차가 자신에게 오는 것, 즉 유형력이 행사되었기 때문이다. A는 B를 폭행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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