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양형 체험 프로그램의 의미

Glox 2025. 2. 27. 22:57


https://www.scourt.go.kr/sc/exp/main.work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국민이 직접 사건을 보고 양형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양형 체험 프로그램인 ‘당신이 판사입니다’를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참여자들은 제일 처음에는 사건의 개요만 보고 양형을 선택했다가, 구체적인 사건 내용과 변론 과정을 거치면서 사건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양형을 선택한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사건 개요만 보고 양형을 선택했을 때에 비하여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알게 되면 선택하는 형량이 다소 낮아진다고 한다.



판결에 관하여 법조계와 일반 국민간 법감정이 괴리되어 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물론 민사보다는 형사에 국한된 이야기다. 법적 지식이 없어도 형사사건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민사사건은 법리도 복잡하고 절차적인 쟁점도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국민들이 뉴스 기사만 보고 판결 결과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에서는 나도 우려가 꽤 있었다. 기사는 지면상 판결문 전체의 내용을 요약해서라도 담아내지 못하고, 일부만을 오해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알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 위하여 일부만을 인용하여 왜곡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단편적인 판결 내용만을 보고 사법불신을 갖는 것에 관해서는 우려가 있긴 하나, 그것이 꼭 대중이 감정적이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양형위원회의 양형 체험 프로그램은 나름 법감정 괴리 해소의 중간단계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약된 사건 내용만 보았다가 구체적인 변론 절차를 거치면서 사실관계를 더욱 확인하고 나면 참여자들이 양형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를 보면 한껏 고조되었던 분노가 사실확인·논증·상황 맥락을 통과하며 뚜렷하게 조정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소위 부정적인 표현이던 ‘국민 법감정’이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가변적인 해석‧감응 체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들의 정서 역시 절차적 경험과 학습을 거치며 정제된 여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양형체험의 1차 선택 단계는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고 즉흥적으로 댓글을 다는 온라인 광장의 장면과 닮아 있다. 피해 규모나 범행 수법 같은 ‘격렬한 정보’만 접하면, 인간은 대표성 휴리스틱을 따라 가장 자극적인 특성을 전체 행위로 확대 해석한다. 이때 형벌은 잘못의 객관적 비중이 아니라 분노의 강도에 비례해 ‘문제 해결 서사’로 소비된다. 이러한 감정을 내버려두는 것은 근대 형법이 극복하려 했던 복수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2차 선택 단계에서는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증거의 신빙성, 피고인의 사회적 맥락 등의 서사적 층위가 추가된다. 범죄의 피해에 따른 응보 일변도의 사고에 책임, 동기, 사회적 구조, 교정 가능성이라는 조건들이 더해지면 응보에서 예방과 재사회화로 시선을 이동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양형 체험이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하면서 범죄자의 인권만 챙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체적 사실을 확인하며 정보가 늘어날수록 반드시 관용이 증대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형 범죄나 아동 대상 성폭력처럼 ‘구체성 자체가 혐오를 증폭시키는’ 사안에서 시민들의 양형은 오히려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보의 질과 제시 방식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여론과 사법체계 사이의 균형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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