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당원의 확립된 견해이다

Glox 2025. 2. 9. 16:34
“~라는 것이 당원의 확립된 견해이다.”

 

 


판결문을 읽다보면 가끔 등장하는 문구다. 사실판단이 아니라 법리를 설시할 때, 어느 당사자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법리를 설시하고 이 법리가 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구다. 

문론 이 문구의 취지를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과 판결 속에서 축적된 법리라는 것이고, 그만큼 많은 근거를 가졌기에 흔들릴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나도 판결문 읽을 때 참조만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좀 낯설게 바라보면 이건 판결문에서 어느 주장을 배척하는 논거가 될 수 없는 문구다.


그 확립된 견해가 도전받는 것이 소송이다

아무 이유 없이 소송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로스쿨생들이 판례를 단순 암기하고 있다고 해도, 변호사가 된 후 “판례에 따르면 우리가 패소하는군요.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합시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로스쿨 교수님들도 변호사시험 강사들도 “판례는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논거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판례를 배우는 이유는 그 판례에서 풀이하는 논증에 타당성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법 해석시 그와 같이 논증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기존의 판례 법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법리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이나 논증을 시도할 수도 있고 그 해석이나 논증이 타당하다면 판례도 바뀔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 ‘확립된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견해가 인정받았을지 모르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그 논거는 A, B, C이다.”라고 하는게 소송이다. 그렇다면 법원으로서는 그 다른 견해의 논거인 A, B, C 자체를 반박하는 논증을 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견해가 ‘확립된 견해’라는 건 논리적 추론의 영역에서는 낄 자리가 없다. 물론, 어떠한 판단이 자주 반복되어왔다는 사실은 귀납적으로 그 판단이 옳을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하지만 형식논리적 추론의 영역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존재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존재/당위 오류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X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한테 “X는 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X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라고 해봐야 그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틀린 판단을 반복해왔구나.” 이상의 의미가 없다. 만약 위헌법률심판을 했는데 “이 법률은 위헌이 아니다. 합헌이라고 판단해왔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상당히 어이없을 수밖에 없다. 간통죄는 4번이나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결국 위헌결정을 받았다. 과거에 특정 판단이 반복되었음은 현재의 논증과는 무관하다.

 


단상
물론 대부분의 판결문은 “~라는 것이 당원의 확립된 견해이다.” 하나로 논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근거들을 들어서 논증을 한다. 그런데 굳이 이 생각을 하는 건 “당원의 확립된 견해이다.”가 판결문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가 해는 생각 때문이다. 법원이 선례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이해될 만은 하지만 결국엔 저 문장은 기존의 법리를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건 기존에는 이랬는데 ~한 이유로 기존 견해가 타당하고 제기된 주장은 ~한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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