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중에는 사실관계가 매우 독특해서 인상깊은 판례들이 있다. 주로 형법 판례가 그런데, 그 판례들이 이론적인 쟁점의 핵심 판례들이 되곤 한다. 인상깊은데다가 중요 판례기까지 하니 로스쿨생들은 그 판례들을 잘 알고 있어서 밈처럼 사용하곤 하는데, 모아보니 꽤 많다.
1.
한 조직폭력배들이 적대 관계 조직폭력배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들이 투숙한 여관을 습격했는데, 정작 호실을 착각하여 투숙하고 있던 무고한 일반인인 피해자를 흉기로 구타하였다. 피해자는 심한 외상을 입고 급성신부전증이 생겼으나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일단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급성신부전증의 경우 음식과 수분의 섭취를 철저히 억제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입원 중 깁밥과 콜라를 먹었다가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인 패혈증이 유발되어 사망하고 말았다. 피해자가 급성신부전증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은 조직폭력배들의 구타 때문일까? 즉,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살인죄가 인정될까?
이른바 김밥 콜라 사건. 형법상 인과관계에 관한 대표적인 판례.
2.
A는 중대장의 당번병으로 군복무하는 병사였다. 평소에 중대장의 관사에 머물며 집안일을 돕고 가끔은 관사 밖으로 다녀오는 심부름도 했었다. 어느날 밤 중대장의 아내가 A에게 전화를 걸어 “비가 오고 밤이 늦어 혼자서는 여우고개를 넘어 귀가할 수 없으니 우산 들고 마중나와달라.”라고 하였다. A는 평소와 같은 심부름으로 여기고 관사를 이탈하여 중대장 아내를 모시고 왔는데, 중대장 허가 없는 A의 관사 이탈 행위가 무단이탈, 즉 탈영일까?
일명 여우고개 사건. 사실 위법성 조각사유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라는 쟁점보다 여우고개라는 이름이 유명하다.
3.
A는 조카인 피해자(10세)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갔다. 조카를 직접 저수지로 밀어버리는 대신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쪽으로 유인해서 함께 걷다가 조카가 미끄려져 물에 빠지자 조카를 구하지 않고 조카가 사망할 때까지 놔두었다. A가 조카를 직접 민 것은 아니고 조카가 스스로 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인데, A에게는 조카에 대한 살인죄가 인정될까?
저수지 조카 사건. 부작위에 의한 작위범에 관한 핵심 판례.
4.
A는 B를 강간하려 하였다. 그러나 B가 ‘다음 번에 만나 친해지면 응해주겠다’는 취지로 간곡하게 부탁하자 A는 강간 시도를 그만두고 B를 자신의 차에 태워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A에게 강간미수죄가 성립하는 것은 분명한데, A는 자의에 의하여 범죄를 중단한 것일까?
친해지면 응해주겠다 사건. 형법상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는 필요적 감면인 반면 장애미수는 임의적 감면이기 때문에 자의에 의하여 중지하였는지가 중요한데, 그 핵심 판례.
5.
A는 다른 3명을 모아 강도의 모의를 하였다. A는 공모자들을 데리고 삽을 들고 사람을 때리는 시범을 직접 보여주며 강도 모의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정작 강도 범행에 나섰을 때 A가 아닌 다른 공모자들이 갑자기 강도 대상을 지목하고 쫓아가기 시작했고 A는 ‘어?’라고만 하고 비대한 체격 때문에 뒤따라가지 못하고 200m 떨어진 곳에 그냥 앉아 있었다. 다른 공모자들은 피해자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 강도상해가 인정되었는데, 강도행위에는 참여하지 않은 A에게도 강도상해죄가 인정될까?
‘어?’라고만 한 사건. 공모관계 이탈과 관련한 중요 판례인데, 동기가 살쪄서 지친 모습을 보이면 놀리는데 쓰이곤 한다.
6.
A는 3인조 절도범들이 물건을 절도해오면 그 장물을 저렴하게 매수해오던 장물아비였다. 그러던 중 함께 다니던 3인조 절도범 중 1명이 체포되었고, A는 나머지 절도범 2명을 만나서 드라이버를 사서 건네주며 “한명이 잡혀서 도망 다니려면 돈도 필요할텐데 열심히 일을 하라.”라고 말하였다. A가 “열심히 일을 하라.”라고 말을 건넨건 절도를 하라는 뜻일까. 즉 A에게 절도교사죄가 성립할까?
이른바 열심히 일을 하라 사건. 교사범의 성립과 관련한 중요 판례
7.
A는 “천지창조”라는 디스코클럽을 운영중이었는데, 이 디스코클럽에는 대학교 1,2학년들이 많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미성년자보호법상 만 20세 미만을 디스코클럽(청소년 유해업소)에 출입시키는 것은 금지되었는데, 20세 미만이어도 대학생이면 사회적으로는 성인이었으니 현장에서는 혼동이 심했다. 경찰에서 개최한 청소년선도 관련 업주회의에서도 이에 대해 확답을 해주지 못했고, 얼마 후 경찰은 “18세 미만자와 고등학생 출입만 단속된다.”고 공문을 보냈고, A는 그 공문을 보고 18세 이상 20세 미만인 대학생들을 출입시켰다. A는 경찰 공문을 보고 했으니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이 아닐까?
이른바 천지창조 클럽 사건. 판례 자체는 비판이 많지만 천지창조라는 클럽 이름이 너무 인상에 남아서 밈이 되곤 한다.
8.
삐끼주점의 지배인인 A는 술에 취한 피해자에게 술을 더 먹이고 신용카드를 빼앗아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종업원들과 그 신용카드에서 돈을 인출해서 갖기로 하고 A는 주점에 남아 피해자를 붙잡아두면서 감시하고 다른 종업원들은 신용카드로 ATM에서 돈을 인출했다. 형법상 2인이상이 합동한 특수절도는 문언상 시간적, 장소적으로 같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같이 돈을 인출한 종업원들 외에 주점에서 피해자를 감시하고 있던 A도 특수절도가 되는 것일까?
일명 삐끼주점 사건. 합동범의 공동정범이라는 어려운 쟁점의 대표적 판례
9.
A는 B가 자신의 아내에게 젖을 달라며 아내를 희롱하자 분노하여 B를 죽일 생각으로 돌로 때렸다. B가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A는 B가 죽은 것으로 알고 사체를 숨길 목적으로 개울가에 웅덩이를 파고 B를 묻었다. 그런데 사실 B는 A가 돌로 때려 기절했던 당시에는 살아있었고 A가 B를 웅덩이에 묻으면서 질식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A의 행위는 살인죄일까 아니면 살인미수와 과실치사일까?
이른바 웅덩이 질식사 사건. 개괄적 고의와 인과관계 착오에 관한 중요한 판례인데 우연이 겹쳐 이론적인 사실관계가 만들어졌다. 폭행 당시에는 살인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고, 파묻을 때에는 이미 죽은 줄 알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것이 이론적인 문제의 포인트.
10.
A는 B를 시켜서 C를 손봐주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B에게 “정신차릴 정도로 때려주라”라고 말하였다. B는 C를 찾아가 구타하였으나 너무 세게 친 나머지 C가 사망하고 말았다. B는 상해치사죄를 범한 것이 되었는데, A는 상해죄의 교사범인가 상해치사죄의 교사범인가? 때리다가 실수로 죽이는 걸 시킬 수 있는 건가?
정신차릴 정도로 때려주라 사건. 결과적 가중범도 많이 어려워하는데 공범론까지 붙어서 어려운 쟁점의 판례.
11.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불러내어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무려 4시간 동안이나 피해자를 둘러싸고 ‘회칼로 죽여버리겠다’고 하거나 깨진 소주병으로 찌를 것처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해자 중 1명이 손바닥으로 피해자의 목덜미를 몇 번 쳤는데,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였다. 가해자들이 119를 불러 피해자는 구급차 안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어떤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가해자들에게는 상해죄가 인정될까?
기절했다 구급차에서 정신을 차렸다 사건. 상해죄에서 상해의 의미에 관하여 쟁점이 될만한 판례
12.
A와 B는 부부였으나 갈등을 겪고 이혼하였다. 어느 날 A와 B가 만나 이야기하다 다투게 되었고 A는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B가 A의 차 앞으로 뛰어들어 가로막았다. B가 비키지 않자 A는 B를 향해 차를 조금씩 전진시키고 B가 뒤로 물러나면 또 그만큼 차를 전진시키는 것을 반복했는데, B를 차로 친 것은 아니었다. A가 B를 향해 차를 전진시킨 것은 차를 이용한 폭행죄일까?
차를 조금씩 전진 사건. 이 또한 폭행의 의미에 관한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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