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해고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노동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너무 중요해서 조문 자체도 외워버렸을 조항이 바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이다. 해고는 근로자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중대한 법적 조치이다. 꼭 해고에 이르지 않더라고 징계 등 징벌들은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그 중요성에 비하여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의 조문은 매우 추상적인 일반 조항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하여는 법문상 구체적 정의가 없기에 결국 정당한 이유란 것은 개별 사안에 따라 법원이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사항이다.
해고사유는 보통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에 규정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는 해고의 정당성을 정립하는 출발점이 되지만, 해당 규정 자체가 곧바로 정당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정당한 이유’는 법원이 그 실질적 정당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게 된다.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사회통념상 당해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3. 7. 8. 선고 2001두8018 판결
판례는 해고의 경우 정당한 이유를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라고 하며, 그 여부는 "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라고 하나, 이것이 정당한 이유를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일까?
언뜻 보면 그럴하하지만 막상 눈을 감고 ‘사회통념’을 떠올리려 하면 곧 막막함에 빠진다. 누구의 통념을 맛하는 것이고 어느 사회를 기준으로 하는가? 판례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듯하나, 이는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적 요소를 제시하였다기보다는 몇가지 정황, 그것도 얼마든지 사후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정황을 예시한 것에 불과하고 결국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법이 말하는 ‘정당한 이유’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해고라는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사용자의 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며, 어떤 근로자의 어떤 행위가 계약을 단절시킬 만큼 중대한가? 이러한 추상적인 기준 하에서는 결국 간접적인 사실관계만을 던져가며 어떻게 잘 포장하는지가 정당한 이유를 논증하는 방법이 되기 쉬데, 이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안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에 대한 보다 정합적이고 규범적인 해석론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근로관계의 본질
판례의 문구 중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라는 문언이 눈에 띈다. 이 말은 고용관계는 다른 관계와 구분되는 특수성이 있고, 고용관계의 핵심을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정당한 이유가 도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먼저 근로계약의 본질적 기초가 무엇인지 고민해본 후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란 근로관계의 본질적 기초가 무너진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정당한 이유를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1. 근로계약은 계속적 계약이다.
근로계약은 일회성으로 마무리되는 계약이 아니라 계속적 계약이다. 매매계약과 같이 일정 시점에 계약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동안 쌍방이 시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연속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계약이다. 표현하자면 근로계약은 ‘시간에 걸친 이행’을 전제로 성립되며, 계약 체결 당시뿐 아니라 이후의 관계가 유지될 것을 신뢰하고 체결되는 계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계약의 본질적 기초 중 '계약의 유지'는 중요 요소라 할 수 있다.
2. 근로계약은 종속적 계약이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노동을 제공하며, 사용자가 정한 위계질서 내에 편입되게 된다. 동시에 사용자는 자신의 사업이라는 전체적인 시스템 아래에 근로자들을 두고 시스템을 운영한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사업이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고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도 그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것이다.
3. 근로계약은 인격적 계약이다.
근로계약은 인격적인 측면과 분리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약이다.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할 때 노동력만을 따로 떼어내어 제공할 수 없다. 근로계약은 사물의 교환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인간의 행위' 그 자체를 계약의 목적으로 한다. 근로자는 자신 스스로를 사용자의 지배 하에 두어야 하고 사용자는 근로자의 인격적 측면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일부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에 사용자의 개입은 근로자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측면에 따르면 근로계약이란 일정한 기간 동안 근로자가 인격을 수반한 노동을 계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조직적 협업체계를 운영하기 위한 계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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