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선 법학적성시험(리트)를 치고 지원 로스쿨에 맞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아야 한다. 면접은 지원자의 인성 등 됨됨이를 보는 역할도 해야겠지만 내가 입시할 때 그 역할은 그리 없는 듯 했다. 대부분은 주어진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구술면접이었다. 면접의 영향력은 학교마다 다르다. 어떤 학교는 면접으로 순위를 꽤 뒤집는다고도 한다.
지금 로스쿨 공부와는 많이 떨어져있지만, 나는 면접 공부를 꽤나 재밌게 했었다. 피상적으로 논거를 여러 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핵심 쟁점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좋았다. 벌써 수험으로부터 오래 지났는데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로스쿨 면접의 길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수험적인 내용은 아니고 로스쿨 공부를 하고 교수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면접은 ‘이런 관점의 접근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떠오르게 된 나의 생각일 뿐이다.
지성 면접 유형
주어진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소위 지성 면접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었다. 내가 분류하고 이름 붙인 것이다.
하나는 제시문형이다. 어쩌면 대입 당시의 논술과도 비슷한데 제시문들이 주어지고 각 제시문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각 제시문의 논지를 읽어내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제시문 외부의 지식은 따로 필요하지 않으며 끌어오더라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참고하는 정도지 그 지식을 알아야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시문형 면접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와 분배에 관한 원칙을 잘 대입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논리적 일관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도 많은 사안을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애초에 딜레마 같은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저울질하는 것이라 정해진 답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제시문을 읽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지적 자극도 되어서 면접 준비하면서 좋아하던 유형이었다. 여유 있을 때 제시문형 문제도 직접 만들어보고 그랬다.
다른 하나는 시사문제형이다. 이건 현재 혹은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시사문제에 대해서 찬반에 관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시사문제이므로 당연히 이 소재에 관한 배경지식과 최근 논의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토론 활동에서 주로 하던 방식이라 익숙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사문제에 관한 찬반토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근거를 바탕으로 한 입장이 다른 입장보다 ‘더 좋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시사문제에 대한 찬반은 일반적으로 현재 사회가 마주한 문제점에 관한 해결방안을 논하는 것이기에 더 나은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로스쿨 면접에서의 시사문제형 면접은 일반적인 시사토론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후배들 입학 면접을 담당하신 교수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서 생각한 결과다.
로스쿨 면접에서 시사문제가 면접 문제로 나온 상황에서 자신이 시사문제에 관해 잘 알고 있어서 각종 통계, 현장의 목소리, 최적의 효과 등을 들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답변을 한다면 당연히 좋은 답변이다. 하지만 면접자인 로스쿨의 입장에서 원하는 형태라고 하기에는 애매할 것이다. 로스쿨에서 원하는 인재는 경영자나 정책입안자가 아닌 법률가니까.(적어도 취지상) 면접자인 교수님의 입장에서 다른 답변들과 구분되고 또 잘 와닿는 답변은 좋은 해결법을 넘어 정당한 해결법을 도출하는 답변일 것이다. 법적 문제에 대한 법적 결론은 사회적으로 효용이 생기는 좋은 결과를 추구하기보다는 법체계 내에서 정당한 결론이 도출되는지 중시하지 않던가. 예전부터 들었던 말이지만 법률가는 권리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단지 결과만을 들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권리가 적절하게 보존되는 ‘옳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음과 옳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법률가의 사고는 좋은 결과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권리를 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양 입장의 이익을 교량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것들
로스쿨에서 공부하면서 돌아보니 로스쿨 면접에서 시사문제형 문제를 분석하는 데에는 헌법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법 체계의 가장 근본이 되는 추상적인 원리들을 다루기도 하고 공적인 영역을 다루는 만큼 이익의 교량과 조화가 문제에 대한 기본 접근 태도기 때문이다. 또한 시사문제는 개인간의 이익대립이 아니라 대부분 공공의 영역에 관한 것이기에 헌법의 원리들을 이해하고 있으면 문제의 구조를 인식하기 쉽다.
- 각 기본권 및 헌법 원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각 기본권 및 헌법 원리를 알고 있으면 일단 찬반의 입장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 찬반 각 입장을 지지하는 이유와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 기본권의 충돌
찬반 입장이 갈리는 것은 한 조치가 한 측에는 좋지만 다른 측에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양 측의 입장에 기본권이 관련되어 있다면 헌법에서는 이 상황을 기본권의 충돌로 표현한다. 기본권의 충돌이란 상이한 기본권의 주체가 상충하는 권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의 동일한 사건에서 국가에 대하여 각기 대립되는 기본권의 효력을 주장하는 경우를 말한다.기본권의 충돌은 한 기본권주체의 기본권행사가 다른 기본권주체의 기본권행사를 제한시킨다.(2002헌바95) 즉 일종의 딜레마 상황이다. 모든 시사문제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권의 충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권 충돌의 해결방법으로 제시되는 ‘규범조화적 해석’, ‘이익형량’의 방법을 이용하면 좀 더 정교한 논리 전개가 가능해진다.
- 기본권 제한 원리 및 과잉금지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학부 때 한 교수님이 모든 조문 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이 조문을 꼽겠다고 한 조문이다. 국가가 어떤 조치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게 될 때 지켜야 할 원리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검토할 때 길잡이가 될 원칙이 과잉금지원칙이다. 헌법 사례 문제도 결국에는 기본권에서 시작해서 과잉금지원칙으로 끝난다.
과잉금지원칙은 국가의 조치에 대해 4가지 질문을 던진다. 1) 목적은 정당한가? 2)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합한 조치인가? 3) 그 방법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방법은 없는가? 4) 그렇다 해도 그 조치가 기본권을 제한해야할 정도로 공익을 증진하는가? 과잉금지원칙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끝도 없을테니 생략하고, 과잉금지원칙을 이용하면 답변이 훨씬 정교해진다. 단지 ‘A 해결책이 이러한 단점이 있다.’ 정도를 넘어 ‘A 해결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그와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피해를 덜 발생시키는 B 해결책도 있고(침해 최소성), 문제 해결한다 해도 그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법익의 균형성)’ 같은 구체적인 논증이 가능해진다.
벌써 면접 한 지가 꽤 지나서 이 이상으로는 잘 안 떠오르는데 이것만으로도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와 답변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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