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모수 게시물을 참조하면 좋다.
모수 사기피해 사건에 관한 관심이 식지 않았는데, 사기사건 자체보다는 모수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져야하는지가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모수 측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람의 핵심 논거는 이것이다.
“모수에서 착신전환을 해주지 않았으면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
즉, 모수의 행위가 사기 피해라는 결과에 개입이 되었다는 것이므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모수가 이 사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책임 논란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사기꾼이 해킹 등의 방법으로 회선을 탈취하여서 사기를 벌였다든가, 사기꾼이 처음부터 모수를 사칭하여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든가.
그런데 이 사건은 모수가 실수이긴 하나 사기꾼에게 속아 착신전환을 시키는 행위를 했고, 그로 인하여 모수 번호로 건 피해자들이 사기 피해를 당했다.
모수가 착신전환 한 행위가 사기 피해라는 결과에 개입된 것은 맞지만, 그 행위가 사기 피해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거라면, 이건 민사상 손해와 인과관계라는 논점을 직관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인과관계에 관한 직관
먼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인과관계를 이해해볼 수 있다.
1) 갑은 을에게 A역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2) 을은 착각하여 A역이 아닌 B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을은 이 지역 사람이라 잠시만 더 생각해봤다면 역을 헷갈리는 일은 없었다.
3) 갑은 을이 잘못 알려준대로 B역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중 신호 위반한 차에 치여 다쳤다.
4) 을이 A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더라면 신호 위반한 차에 치여 다쳤을 일은 없었다.
이 경우 을이 역을 잘못 가르쳐줘서 갑이 다쳤으니 책임이 있다고 하긴 조심스러울 것이다. 만약 “어쨌든 을이 역을 잘못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갑이 다칠 일은 없었으니 책임이 있잖아?”라고 한다면 무리한 주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인과관계를 “조건설”이라고 하는데 이는 후술한다.
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을의 행위와 갑이 다친 사실 간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까? 먼저 결국 갑을 다치게 한 것은 을이 아닌 신호 위반한 차라는 점, 그리고 B역으로 간다고 해서 신호 위반한 차가 나타날 것이라는 건 예상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직관이 중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첫 번째로 갑을 다치게 한 것은 을이 아니라는 점은 제3자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번째로 신호 위반한 차가 나타날 것을 예상 못했다는 건 예견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을의 행위 자체는 위법한 행위가 아니다. 손해라는 결과는 중간에 제3자가 개입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또다른 사건의 개입이 최초의 행위 시 쉽게 개입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최초의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는 단절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사람이 역까지 가다보면 신호 위반한 차가 달려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신호 위반한 차가 사람을 덮치는 일은 예외적인 사건이지 항상 그 가능성을 예견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인과관계라는건 어느 행위가 결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야 하고, 그 행위가 일어나면 특정한 결과가 일반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인정될 때 성립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직관을 법적으로 설명해보면
우리는 흔히 ‘그 일만 없었더라면 이런 결과도 없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본 가상의 사례에서 갑을 다치게 만든 원인이 을의 길 안내 착오인지, 신호위반한 차인지, 혹은 둘 다인지 판단하려면 단순한 ’시간 순서‘ 이상의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상당인과관계다.
단순히 어떤 행위가 손해의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그 책임을 지우지는 않는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인정하려면 그 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려면 위법한 행위와 원고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결과 발생의 개연성, 위법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62905
그런데 이 상당인과관계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다. 실무에서는 이 상당인과관계를 논증하는게 중요한 과제인데, 수험상으로는 인정된 판례, 부정된 판례만 외울 뿐 이를 직접 판단해보지도 않는다. 위 판례 문구도 사실 모든걸 인과관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잘 고려해서 판단한다는 소리다. 어쨌든 행위와 결과 사이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결국 말하자면 “그 행위를 했으면, 보통은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느냐”는 건데, 말장난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수긍 못하니까 소송이 걸리는건데 말이다. 대신 누가 봐도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려운 극단적 사례를 보면서 역으로 인과관계의 성립 조건을 추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너무 우연적이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었거나, 독립된 행위가 중간에 개입되었다면 인과관계는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결과에 대한 개입 자체, 즉 시간적 선후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것을 조건설이라 하는데, 이는 “A가 없었더라면 B도 생기지 않는 관계라면 A와 B는 인과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명확하긴 하나 실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가상의 사례에서 조건설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갑이 다친 원인은 “갑이 외출 했기 때문” 나아가 “갑이 태어났기 때문”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갑이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차에 치일 일도 없고 나아가 갑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다칠일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건 인과관계를 너무 확장하니 무리다.
모수 사건에 대한 적용
모수 사건은 확답 내리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 변호사들 중 모수의 민사상 책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 사람도 있지만 어렵다고 본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수 사건에서 직원이 사기꾼의 말을 믿고 착신전환 해준 행위 자체는 사기 피해라는 결과에 개입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사실이 논쟁의 중요 포인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개입만으로는 민사상 인과관계가 무조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수의 책임에 관한 양측의 의견 모두 가능성이 있으므로 인과관계에 대한 직관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논증을 할 수 있다면 어느쪽이든 타당한 의견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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