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법

[사건과 법] 아덴만 여명 작전과 현행범 체포

Glox 2025. 1. 4. 22:17

https://www.yna.co.kr/view/AKR20110121170700043

 

 

  

2011115, 아라비아해에서 대한민국 삼호해운 소속 선박인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해적행위가 빈번히 발생하자 대한민국은 그 해역에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별칭 청해부대)를 파견해왔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청해부대로 하여금 해적 소탕 및 인질 구출을 하도록 명령했다.

 

청해부대에 정보를 전달하고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의 영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배를 천천히 운항하도록 한 석해균 선장의 기지, 정확한 계획 하에 작전을 수행한 청해부대원의 힘으로 청해부대원들은 피랍되었던 삼호 주얼리호의 선원 21명을 전원 구출하였고, 소말리아 해적들은 사살하거나 생포하였으며, 청해부대원들의 사망자는 없었다.

 

즉 청해부대는 아덴만 여명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덤으로 이 아덴만 여명 작전은 형사소송법에서 중요한 판례를 하나 만들었다.

 

 

 

현행범인 체포

 

위에 썼듯이 청해부대원들은 소말리아 해적을 생포하였는데, 대한민국은 이들을 국내에서 처벌하기 위해(해상강도죄) 대한민국으로 압송하였다. 이 때 청해부대원들은 어떤 권한으로 소말리아 해적을 체포한 것일까.

 

 

 

범죄자는 그냥 잡아서 가두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은 얼핏 상식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영장주의 원칙에 따라 범죄자라도 이를 체포, 구속하는 것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 범죄자라고 불리는 사람도 원칙적으로는 범죄자로 의심받는 사람이며, 국가가 단순히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등 신체를 구속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영장주의를 강력하게 요구하면 진짜 범죄자를 잡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커지므로 형사소송법은 몇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청해부대원이 소말리아 해적을 체포한 것이 그 예외인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인의 체포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
제211조(현행범인과 준현행범인)
① 범죄를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고 난 직후의 사람을 현행범인이라 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현행범인으로 본다.
1.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고 있을 때
2. 장물이나 범죄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한 흉기나 그 밖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때
3. 신체나 의복류에 증거가 될 만한 뚜렷한 흔적이 있을 때
4.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고 할 때
 
제212조(현행범인의 체포)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체포할 수 있다.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현행범인은 도망칠 것이므로 체포의 긴급성이 있고, 범죄 중이거나 직후라서 상대적으로 범인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당한 인신구속이 될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이에 형사소송법이 영장주의의 예외로 영장 없이 체포를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체포의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청해부대원들은 해적행위를 하고 있는 중인 해적들을 체포했으므로 현행범인의 체포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했고 이 부분은 크게 문제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형사소송법 조문대로라면 문제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213조(체포된 현행범인의 인도)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아닌 일반인도 현행범인을 체포할 수는 있으나, 그런 일반인이 현행범인을 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현행범인은 특수성이 있어서 일반인에게도 체포 자체는 허용해주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사기관이 체포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일반인에게도 허용해준 것이므로 일반인은 계속 범인을 체포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수사기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청해부대원들은 군인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사람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군인이지 경찰이 아니다. 상대방은 교전 중인 적국의 병사들이 아니므로 생포한 해적들은 포로로서 잡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죄자를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덴만 여명 작전은 아덴만 근방에서 이루어졌고, 그곳에서 대한민국까지는 약 7800km가 넘게 떨어져있었다.

 

청해부대원들은 처음에는 해적들을 인접국에 인도하려 했지만 인접국에서 이를 거절하는 관계로 국내로 이송하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UAE의 협조를 받아 특수 항공편으로 부산에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해적들이 체포부터 부산의 경찰까지 도달하는데 9일이 소요되었다.

 

객관적인 시간상으로는 즉시라고 보기 어려운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인이 현행범인을 체포하고도 수사기관에 범인을 인도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 그 일반인에게 형법 제276조의 체포 또는 감금죄가 성립할 것으로 보이는 건 별론으로 하고, 체포된 현행범인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례가 딱히 없었는데, 절차법의 특성상 현행범인을 즉시 인도하지 않았다면 그 체포는 위법한 체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현행범 체포가 위법한 체포가 된다면 위법한 체포로 인하여 얻어진 증거들은 형사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고(위법수집증거배제의 원칙), 체포된 현행범인도 석방해주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

 

한편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212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이하 ‘검사 등’이라고 한다) 아닌 이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등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213조 제1항). 여기서 ‘즉시’라고 함은 반드시 체포시점과 시간적으로 밀착된 시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인도를 지연하거나 체포를 계속하는 등으로 불필요한 지체를 함이 없이’라는 뜻으로 볼 것이다.
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도12927 판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즉시를 물리적,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불필요한 지체 없이라고 보아 해적들의 인도에 9일이 걸렸어도 그동안 불필요하게 지체한 사실은 없었으므로 체포가 위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청해부대원들이 체포한 곳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즉시를 물리적, 시간적 의미로 본다면 아무리 빨리 인도하려 해도 그 즉시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아덴만 여명 사건이 이 해석의 사례가 되어서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의 가구밖에 없는 섬에서 현행범인의 체포를 하였는데 태풍이 몰아쳐 수사기관에 인도할 수 없는 상황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형사소송법이 즉시를 물리적, 시간적 의미로 한정하고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현행범인의 체포 제도가 사실상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즉시 인도를 규정한 취지와도 동떨어진 상황이므로 대법원의 이 판단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형사소송법 제213조의2, 200조의2 5항은 검사 등이 현행범인을 체포하거나 현행범인을 인도받은 후 현행범인을 구속하고자 하는 경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여야 하고 그 기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 48시간의 기산점도 체포시가 아니라 인도시라고 밝혔다.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체포시로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48시간을 충족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므로 대법원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볼만하다.

 

 

그 이후

 

이처럼 아덴만 여명 작전은 형사소송법 현행범인 체포 부분에서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체포되었던 해적들 중 석해균 선장에게 총을 쏜 해적에게는 무기징역이, 나머지 해적들에게는 15년형, 13년형, 12년형 등이 선고되었다.

 

한 유튜버가 법무부로부터 답변을 받은 바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해적을 제외한 나머지 해적들은 출소 후 강제퇴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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