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근무중이다.
변호사로 일한지 두 달 좀 지났고 여름 휴정기(법원에 재판이 없는 시기)를 맞아 나도 짧은 여름 휴가 중이다. 올해 1월에 변호사시험을 쳤고, 4월에 합격 발표가 있었고, 열심히 취준하다가 로펌에 채용되어 근무 중이다.
변호사 생활에 만족한냐고 한다면, 아직은 만족한다. 야근이야 원래 간간히 하는 것이고, 사건 종류도 다양하고 꽤 몰입해서 수행할 수도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건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져서 괴로울 정도는 아니다.(물론 변호사 직업 특성상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경력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느낀 점들이 있다.
1. 민법이 중요하다
괜히 '민법이 중요하다', '민법을 잘 해야 좋은 변호사가 된다'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민법이 양도 많고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수험 단계에서나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민법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관계에서 법률적 구성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민법은 일반법이고 민사에는 온갖 특별법들이 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일반법에 대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특별법 영역의 법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지만, 그 특별법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 법률관계인지 판단하는 건 민법 실력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했던 사건 중 조세 사건이 있었다. 나는 조세법 내용을 이전에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게다가 조세법 하면 기술적이고 숫자가 중요한 내용들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해당 사건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계약의 완결 시점이었다. 계약관계가 엄청 꼬여있는 사건이었는데 그 사실관계를 민법적으로 재구성해 A 시점이 아닌 B 시점에 계약이 완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사실관계를 민사적으로 재구성한 뒤 조세법 법리는 조문과 판례를 잘 적용하면 됐다.
이처럼 민법 실력은 법리 적용 이전에 상정될 법률관계를 구성하는 힘이 있고, 때로는 사안의 법률관계를 완전히 달리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해 판을 뒤집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2. 판례가 없는 사안이 꽤 많다
현실에서는 온갖 꼬이고 복잡한 사건들이 많아서 사안에 맞는 판례가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복잡한 사건들에 딱 들어맞는 판례가 없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판례가 있을법한테 없는 사안들도 많다. 처음에 사건 기록 읽을 때에 대충 XX법 어느 파티에 이거랑 비슷한 판례 있지 않나 하고 생각나서 어렵지 않겠다 했는데 검색해보니 판례가 없어 당황하는 경우들도 있다. 1년에 나오는 판례가 몇개인데 맞는 판례까 없다니 인간 세상은 역시 넓다는 건 느낀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들어맞지는 않지만 관련성 있는 판례에서 '이 판례 취지에 비춰보면 이 사안도 ~게 될텐데' 정도가 한계다. 이것만으로는 리스크가 커서 좀더 검토하게 되지만 사실 진전이 더 있긴 쉽지 않다.
3.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2, 3주 정도만 해도 아직 낯설었다. 로펌 입사하고 나서 별도 교육기간을 거친 것도 아니고 첫날부터 일하면서 배워서 그런지 갑자기 세상이 나를 변호사라고 부르는 느낌이었다. 특히 로스쿨 재학 중에도 수험에만 매달린 것이 아니라 법률 제도 의미나 판례를 탐구하곤 했는데 이게 실무랑 닿는 부분이 있어서 지식의 양 차이만 빼면 나의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다 휴가 가고 나니 법리 이상의 사건을 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이건 여러번 표현해보려 했는데 정말 설명이 잘 안 된다. 법리에 관해 열심히 탐구하고 종합적으로 보려 해도 법리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사건 전체를 보는 눈과 조금 차이가 있다. 단순한 스킬이나 능숙함 문제가 아닌 종합적인 것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에는 글씨를 쓸 때 한자한자 원문을 보고 따라 쓴 것 같은데 요즘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조금씩 글씨로 써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 이상의 표현이 어렵다. 여튼 좀 달라졌다. 그리고 아직도 일 할 기간 많이 남았으니 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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