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 끝난지도 벌써 한달 가량이다. 시험 끝나고 급하게 기숙사 정리하고 이사하느라고 정신 없었는데, 시험 경험 후배들한테 얘기해주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쌓였다. 기억을 되짚어 생각하는 변호사시험 후기
1. 시험기간 동안 정말 괴롭다.(멘탈 문제)
로스쿨 3년 그 어느 때보다 변호사시험 기간 5일이 정말 고통스럽고 괴롭다. 아마 괴로움을 회피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이 힘들면 잠을 자거나 다른 일 하면서 잊는 것이 가능한데, 변시 기간 중에는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이 다음 날 시험 분량 공부를 절대 다 끝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긴장, 두려움 상태로 하루 20시간을 그대로 깨있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심적 부담감을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견뎌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괴로움을 견디며 시험을 쳐야 한다. 그런 우울감을 해소하지도 못하고 받아내고 있다보면 사람이 많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도 한 멘탈튼튼 한다고 주변에서 들었는데 3일 차 휴식일 날 너무 침울해서 친한 친구들 있는 카톡방의 옛날 대화 올려다보면서 한 30분가량 보낼 정도였다. 그런만큼 침울감이 너무 심해질 때에는 너무 혼자 있기 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곳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아보인다.
2. 시험 전날까지 완전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로3 시작 때만 해도 열심히 하면 범위 중에 한 부분 물어보면 목차, 판례 나올 수 있게 다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가능하다. 그나마 객관식이라면 선지 5개 중 3개 정도는 대충 알 정도로 전 범위를 볼 수는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례형에서 깔끔하게 쟁점 추출하고 일반론 키워드 적고 판례 넣을 정도로 전 영역 대비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2학기부터 장기 계획 잘 세우고 차근차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되는대로 하다간 막판에도저히 답이 없어질 것이다. 반대로 완벽한 대비는 애초에 불가능하니 충분히 계획 세웠고 실행해 나간다면 빈 부분이 있어 걱정되어도 시험에서 실제로는 큰 무리 없는 것 같다. 1등 하려는 시험 아니고 통과하기 위한 시험이니 계획대로 해 왔다면 일단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마음 가져도 좋다.
3. 형사법 객관식 주의
모의고사 후기에서도 말했지만 1일차 공법 끝난 후부터 2일차 형사법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1일차, 2일차 관계지만 공법이 오후 7시에 끝나니 실제로는 볼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형사법 객관식은 미리 해두지 않으면 힘들다. 형법 각론이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형법 총론, 형사소송법은 의외로 분량이 많지 않다. 특히 형사소송법은 한번 흐름 이해하고 핵심만 봐두면 사례 대비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객관식 대비가 중요하다. 그런데 형법 각론 분량이 말도 안 되게 많아서 시간이 부족할 확률이 높다. 평소 우선순위 높은 내용들은 많이 봐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론은 미수, 공동정범 등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구성요건 관련 내용 위주로 보다가는 객관식에서 어렵다.
4. 아는 것(정확히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가 크다.
이번 시험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다.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 시험 시 답안지에 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시험 때는 시간도 부족하고 극도의 긴장 상태이기 때문에 평소라면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도출할 수 있는 내용들도 못 쓸 수 있다. 이번 시험에서도 사례형에서 '이 다음에 뭔가 들어갈 내용이 있다는 건 아는데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많았다. 양을 함부로 늘리지 말라는 것도 이것과 연결된다고 본다. 양을 늘리는 이유가 내가 안 본 부분에서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인데, 내가 본 부분도 못 쓸 가능성이 있다. 내용을 본 적 있다고 답안지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양 늘려도 효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사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확실히 다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양 늘려서 내용 대충 봤어도 시험 당일 머리 하얘져서 밖으로 안 나오면 다 소용없다.
기계적 루틴을 정해두는 것도 좋다. 답안지 구성하면서 쟁점이 제대로 안 보이면 기계적으로 요건 쓰고 의의 일반론 쓰도록 숙달시켜 놓고 잘 암기하는 것이 좋다. 일단 요건 및 일반론이라도 쓰면 점수가 조금이라도 있고 쓰다보면 자극받아서 관련 내용이 생각날 수도 있다.
5. 시험 직전일수록 소송법이 중요하다.
민, 형사법 모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한데 민사법에서 더 중요하다. 민사법 공부를 하면 보통 실체법인 민법을 공부하기 마련이라 민사소송법은 점점 밀리다가 최소한만 갖추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시험 직전일수록 민사소송법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고 우선순위도 더 높다고 생각한다. 민사법에서 민사 2문은 거의 소송법만 다루고 민사 1문에서도 소송법이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양만 보면 민사소송법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민법은 3년간 해왔기 때문에 정확히 아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쓰게 되어 있다. 사안이 대충 눈에 익든, 쓰다보니 생각이 나든, 그 판례를 몰라도 일반론을 어떻게든 연결해서든 쓸 수 있다. 반면 민사소송법은 익숙치 않아서 뭐라도 쓰는게 힘들뿐더러 소송법 특성 상 사안 해결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추를 잘못 꿰면 그 뒤 내용을 다 틀릴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민사 사례 전날은 거의 민사소송법과 상법만 봤다.
6. 각이 보이는 판례는 구체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시험공부하다보면 '이거 사례로 내기 좋은데?' 싶은 판례들이 있다. 특수한 사실관계(상가임대차, 압류)가 너무 개입되지 않고, 판례에서 설시하는 논거가 다양하고, 권리주체가 셋 정도 나오는 판례들이 그렇다. 그런 판례들은 그 안의 일반론과 결론에 이르는 논거들도 조금씩 챙겨두는 것이 좋다. 사례로 만들기 좋은 판례들은 권리주체 간의 법적 관계를 하나씩 정리해나가며 최종 결론이 나오기 마련인데 판례 결론만 알고 있으면 답안지에 쓸 것이 없다. 그런데 출제 의도는 논거들과 결론에 이르는 과정들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배점이 크기 마련이고 결론만 대충 쓰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말 힘든 시험이었는데 그래도 3번의 모의고사 모두 괜찮았고 객관식도 안정적으로 나와서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후의 일들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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