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 보충지식(노동법)

근로시간 유연화와 인식적 전환

Glox 2023. 3. 16. 16:39

근로시간 유연화, 주69시간제. 최근 뉴스 헤드라인을 덮는 단어들이다. 다만 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상당수가 제도의 고찰과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정쟁과 All or nothing식의 접근이 많다. 무조건 주69시간제가 되어야 한다고도, 무조건 지금의 근로시간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도 생가갛지 않는다. 다만 정교한 로드맵을 가진 변화라 하기에는 급격하다고 느껴진다. 예전에 노동법이 사회에 비치는 영향 이야기를 말했듯이 노동법제는 사회의 모습을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뒤바꾼다. 대부분의 법은 일정 영역의 사람만을 규율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노동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규율한다. 그만큼 미치는 영향력이 큰데 결코 정교하기 정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한 근로시간제 변화를 섣불리 도입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아주 큰 단위의 노동체계에 대한 전환이다. 기존의 노동법제는 근무장소, 근무방식, 근무시간이 정형화되어 있고 획일적인 산업화 시대의 공종노동자의 근로관계를 기본 뼈대로 해왔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시대가 되며 많은 수정을 가했으나 기본 뼈대는 그러하다. 그러나 기존 노동체계의 모델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기존 모델에 계속된 수정이 가해질지 아니면 기존 모델이 전면 개정될지 알 수는 없지만 변화는 확정적으로 예정되어 있다. 새로운 노동형태와 근로자성의 포섭에서도 다루었지만 기존 노동법제로는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노동형태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와 근로자의 회색지대인 플랫폼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에 대한 보호 필요성의 당위는 둘째치고 이와 유사한 노동형태게 계속해서 출현하는 것은 확정적이다. 기존 노동법 체계가 이들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근로시간 체계의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다. 공장 제조업 노동자에게는 근로시간이 생산의 지표였지만 이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IT, 엔터테인먼트, 문화산업으로 넓혀보면 더욱 그러하다.

필요한 때에는 몰아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유연하게 일이 없을 때 쉰다는 이 이슈에서 모델이 되는 것은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제’인 것으로 보인다. 계좌에 돈을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 인출해서 쓰듯 실근로시간과 소정근로시간 간의 차이를 적립하여 일의 양에 맞추어 일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초과한 시간이 저장되어 모이면 근로자가 필요한 때에 휴가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제도라고 한다. 장기휴가로도 쓸 수 있어 근로자의 학업이나 육아용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생애주기에 따른 변화가 요구되는 때에 장기적 관점의 인생설계를 위해서라면 근로자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특히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제도와 현실은 얼마든지 별개가 될 수 있다. 예전에 노동법 공부할 대도 그렇고,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우리나라 노동법 자체는 꽤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법 수업 때도 교수님이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하셨다. 문제는 법 집행의 현실이다. 예전 노동사건 보조할 때 사건들을 보면 그냥 대놓고 법을 위반해서 관련 내용이 법에 없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장기적으로 법 위반 노동관행, 소송을 통한 권리구제의 현실적인 어려움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큰 틀에서의 전환에 공감할지라도 당장 자신에게 벌어질 악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힘의 불균형이라는 노동법의 기본 전제도 당연히 잊으면 안 된다. 국가가 법 위반 노동관행을 철저하게 제재하고 위반행위는 일부 음지에서만 벌어지는 사회였으면 전환에 관한 큰 논쟁이 있었다 해도 이토록 부정적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물론 노동청에는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고 근로감독관 부족, 소규모 자영업 위주의 경제 문제 등 현실적인 측면은 일단 제외한다.) 그런만큼 개편과 더불어 총체적인 정비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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