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11194977
눈이 내리면 눈사람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법학관 사이에는 농구코트가 있는데, 농구코트는 넓고 흙바닥도 아니고 평평하니 눈이 소복하게 잘 쌓인다. 그래서 눈 내린 날 아침에 법학관 갔다가 밤에 공부 마치고 돌아갈 때 보면 농구코트에 눈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있곤 한다. 어릴적 눈사람 만들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재밌게 눈사람 만들었을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길가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굳이 왜 부수는지 이해 안 되는 일이긴 한데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논쟁이 될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법적으로 문제 있는지 얘기도 많이 나와서 글을 써본다.
남이 만든 눈사람을 부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남이 만든 눈사람을 부쉈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는 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논쟁 중에 나오는 의견 중 하나가 남이 만든 것을 부쉈으니 손괴죄가 아니냐는 것이 있는데, 손괴죄가 적용될 가능성은 낮다.
형법
제366조(재물손괴등)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는 물건을 부수면 무조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재물을 부숴야 한다. 이 때 눈사람은 타인의 재물에 속할 확률이 낮다.
'타인의 재물'이란 말은 '타인의 소유 또는 점유' + '재물'로 구성되어 있다. 재물의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판례는 재물이 반드시 금전적 가치를 지닌 것에 한정된다고 보진 않기 때문이다.
재산죄의 객체인 재물은 반드시 객관적인 금전적 교환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고 소유자, 점유자가 주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족하다고 할 것이고
대법원 1996. 5. 10. 선고 95도3057 판결
그러나 재물의 소유권 판단은 민법에 의하는데, 눈사람이 민법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려면 그 사람은 눈사람을 마치 자기의 물건인것처럼 다루고 신경써야 한다. 내 물건이었다면 길바닥에 그냥 두지 않을 것이고, 사정상 둘 일이 있어도 자기가 버린 것이 아니고 임시로 갖다둔 것이라고 표시를 할 것이다. 눈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눈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이 함부로 만질 수 없도록 뭔가 쳐두거나 표시하고, 녹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눈사람이 녹거나 누가 가져간다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마는 경우라면 눈사람 만든 사람은 그 눈사람을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거리 눈사람의 대부분은 '타인'의 재물이 아닌 무주물에 불과하고, 무주물인 눈사람을 부순다 해도 재물손괴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기사와 같이 노력을 들여 만들었고 홍보물로 사용하고 있던 경우에는 충분히 소유의 의사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함부로 부쉈다가 재물손괴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고, 또 카페였다는 점에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만든 눈사람을 부수다가 다친 사람이 있으면?
눈사람을 만들 때 모양을 잘 잡기 위해서 안에 돌을 넣거나, 위 사진을 볼라드를 뼈대로 해서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고 눈사람을 발로 찼다가 다치면 눈사람을 만든 사람에게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까?
높은 확률로 눈사람이 만든 사람이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다.
민사 책임과 형사 책임이 있을텐데 이 쟁점에서는 우연히도 그 둘의 문제가 비슷하다. 민사적 책임이란 자신의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배상하는 것이고, 형사적 책임이란 죄를 지어 그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 때, 그 책임이 성립되기에는 ① 고의 또는 과실이 없어서, ② 고의, 과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인과관계가 없어서 책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하 고의 과실과 인과관계에 있어서 민법과 형법에서 조금 달리 취급하지만 이 글에서는 큰 구분을 두지 않아도 결과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여 묶어서 설명해본다.
먼저 민사적으로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을 고려할 수 있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형사적으로는 사실 맞는 것이 없다고 보지만 그래도 끼워맞춰보면 내가 눈사람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 둔 결과 누가 다쳤으니 형법 제266조의 과실치상죄라고 해보자.
형법
제266조(과실치상)
① 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일단 중요한 건 고의 또는 과실이다. 민법 불법행위책임은 조문에도 쓰여 있듯 고의 또는 과실을 그 요건으로 하고, 형법 과실치상죄도 과실로 인하여 사람이 다칠 것을 요한다. 그런데 눈사람 뼈대를 잡기 위해 안에 돌을 넣거나 볼라드를 뼈대로 해서 만든 건 일부러 누구를 다치게 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눈사람 만든 사람에게 남을 다치게 할 고의는 없고, 사실 있다 해도 입증하기 어렵다. 눈사람 뼈대를 위해 안에 무언가 넣었다는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과실도 성립하기 어렵다. 과실이란 주의의무를 전제로 하는데, 눈사람이 그렇게 위험한 물건도 아니고 눈사람으로 인해 남들이 다칠 것을 고려해 뭔가 조치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쉽게 무너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사람에 휩쓸려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면 눈사람 만든 사람은 당연히 이를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눈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법과 형법에서의 인과관계 인정 방법이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사안에서는 결론에 큰 차이가 없다. 눈사람을 만들어놓는다고 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그걸 부수는게 당연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잖는가? 무슨 빛에 이끌리는 불나방도 아니고 지나가다가 눈사람을 부수어야 할 당연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세상에는 눈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고, 부숴지지 않고 녹을 때까지 남아있는 눈사람도 많다. 즉, 눈사람을 만든 행위와 눈사람을 부수다 다친 결과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단상
눈사람을 부순다고 동물을 학대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것이 인간을 향할 것이라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을 안 좋게 생각한다는 반응에 '눈사람 감수성', '눈사람권' 같은 말을 들어가며 눈사람을 부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변호하는듯한 인터넷 댓글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사람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쨌든간에 폭력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폭력성의 발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길거리에서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굳이 그 사람에 가까이 지나가고 싶지 않고 꺼림찍할 것이다. 이처럼 습관적인 비속어 사용 등 폭력의 발현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고, 남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이 폭력적인 모습을 내보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꺼리고 싫어하는 것 또한 인간 본능상 이상하지 않은 반응인 것이지, 그 기저에 눈사람 감수성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이러한 태도는 마치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비판은 모두 부당하다고 여기는듯한 태도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폭력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눈사람이 길을 막아서 지나갈 수가 없는 것이 아닌 한, 눈사람을 부수는 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굳이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눈사람 부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해서는 안 되고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처럼 변호하는 건 모순이 아닌가? 자신도 하지 않아도 되는걸 별다른 이유 없이 했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비판을 받는 것도 용인해야 정합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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