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기업의 핵심 업무에 대한 위탁의 허용 여부

Glox 2025. 12. 12. 23:56

노동 사건의 한 축이 바로 '근로자성' 문제다.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령은 기본적으로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상자가 근로자이냐 아니냐는 노동 사건의 기본 전제가 된다. 일을 했으면 모두 근로자가 아니냐 싶겠지만 우리 법체계 하에서는 노무를 제공한다고 하여 모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법상 사람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고용, 도급, 위임이 있다. 고용은 근로관계와 비슷하니 넘어가고, 도급은 일의 완성을 맡기는 것, 위임은 사무처리를 맡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 할 때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삿짐 나르는 일을 맡기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노동력을 제공하였지만 그 사람들이 내 근로자인 것은 아니다. 이건 보통 도급이다.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으면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의사선생님이 내 근로자인 것은 아니다. 이건 보통 위임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람이 일을 하고도 그게 꼭 근로자로서 일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업(혹은 사장)이 사람을 썼지만, 그 사람이 근로자가 아닐 수 있다. 보통 기업이 딱 특정 업무만 정해 그 업무를 완성만 하도록 시키는 위탁의 형태로 사람을 사용하여 근로자성 문제가 발생한다. 일상에서 볼 수 있고 직관적인 사례가 학원 강사인데, 학원과 계약하여 수업만 하고 수강생에 비례해 수익을 얻거나 하면 이른바 프리랜서로 근로자가 아니고, 학원 지시를 받으며 수업 및 다른 일도 하면 근로자가 되곤 하여 경계의 영역에 있다.

 

최근에 근로자성이 문제가 되는 사건을 하나 수행했는데, 그 수행 과정에서 든 의문이 바로 "기업이 자신의 핵심 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가?" 즉, 기업의 본질을 고려하면 기업의 핵심 업무는 필연적으로 근로자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여야지 위탁과 같은 느슨한 형태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이다.

 

물론 우리 법리상 근로관계의 핵심은 사용종속관계이고, 기업의 핵심 업무 수행 여부는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따라서 기업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되어야 할 법리적인 부분은 조금 더 논증이 필요할 듯 하나, 직관적으로 기업의 본질상 기업의 핵심 업무는 자연히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법학은 아니나, 대학 전공인 사회학 전공 수업인 조직이론에서는 왜 조직을 만드는지 그 근원을 탐구하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기억에 비추어 기업의 본질을 생각해보아 기업의 핵심 업무는 근로자에 의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이론적 배경을 정립해보고자 한다.

 


 

시장이 있는데 왜 노동력조차 매번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구하지 않고 장기간 구속되어야 하는 근로자를 뽑는가?  당시 수업에서 기억에 남는 건 거래 비용과 불확실성이다. 기업이 하려는 일을 매번 시장을 통해 최적의 사람을 최적의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구하여 맡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구해질지 안 구해질지 모르고 그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다. 그런 거래 비용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하여 내부로 편입시키는 것이 조직이라는 것이다.

 

기업을 무엇을 만들고 팔아 이익을 남기는 존재로만 보면 고용(또는 근로관계의 성립)은 단순히 노동력을 사오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기업의 본질을 시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조직으로 풀어내는 장치로 보면 고용은 기업이 스스로를 성립시키는 핵심 방식이 된다. 기업은 개별적인 시장에서의 협상 대신 하나의 방향과 규칙 아래에서 자원을 결합해 지속적으로 가치(제품, 서비스, 혁신, 신뢰)를 생산한다.

 

기업이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서 계약한다면 매번 탐색, 협상, 계약 체결, 품질검수, 분쟁해결에 드는 비용이 누적되는데, 고용은 그 대신 관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그 비용을 낮춘다. 고용은 장래의 불확실성을 남겨둔 채로도 일의 방향을 맞추게 해 주는 제도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된 상대방이 가진 것 외에도 일의 통제권을 확보해 예외 상황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결국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단지 노동력을 구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능을 내부에서 생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기업의 핵심 업무는 기업이 지속되기 위하여 일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여야 하고, 그 수행에 따른 역량을 측정하여야 하며, 기업의 의도가 정확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기업은 자신의 핵심 업무를 형식상 위탁 등으로 외주를 맡긴다 해도, 결국에는 기업 자신이 일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즉, 기업의 본질적 업무를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자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관계가 형성될 개연성이 구조적으로 높으므로 근로자성을 사실상 추정하는 것이 경험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직관과는 별개로 법리적인 정합성이나 실제 판단 사례를 검토하여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경우에는 근로자성을 추정하는 해석론이 타당하다고 본다.

'로스쿨생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사진으로 차 주인 불러내기  (1) 2026.01.05
도로 외 음주운전의 각기 다른 결과  (0) 2025.10.10
치안에 관한 통계와 인식의 차이  (0) 2025.10.05
발표  (0) 2025.10.03
“위계에 의한”의 오해  (0)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