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위계에 의한”의 오해

Glox 2025. 9. 6. 22:19

교수와 대학원생, 직장 상사과 부하 등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상급자가 가해자이고 하급자가 피해자인 범죄가 발생하면 사람들이 “위계에 의한 XXX” 아니냐고 말하는 일이 있다. 그러니까 범죄이기도 한데, 더 죄질이 나쁜 범죄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에서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위계에 의한'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위계(位階)와 위계(僞計)
아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위계질서 할 때 위계(位階, hierarchy, 지위나 계층 따위의 등급)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게 익숙할 것이다. 위계질서라는 말은 꽤 널리 쓰이는데다가, 위계라는 말도 따로는 잘 안 쓰이는 편이지만 “위계가 엄격하다.” “위계가 존재한다”라는 말이 조금씩은 쓰이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급자가 자신의 직급이나 지위를 내세워 하급자가 쉽게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상황을 “위계에 의한 XXX”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법률 용어로서의 위계는 위계(僞計, 거짓으로 계책을 꾸밈. 또는 그 계책)를 뜻하는 것이고 쉽게 말하자면 보통 속임수를 의미한다. 이전 내 글에서 나왔던 ‘위계의 의미’ 할 때 위계가 바로 이 속임수인 위계를 의미한다. 위계질서 할 때 위계가 일상적으로는 익숙할테니 이 의미의 위계는 어색할텐데 한자가 허위 할 때 위(僞, 거짓 위), 계략 할 때 계(計, 셀 계)라는 걸 알면 이해가 편하다.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판례에서도 법률용어로서의 위계는 속임수를 말한다고 보고 있다.

그럼 위계질서 내세우는 건 따로 처벌 안 하냐고 할 수 있는데, 형법상 위계가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닐 뿐이지 다른 이름으로 적용되고 있다. 바로 위력이다.



위계질서를 내세우는 건 위력

위력이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 무형의 힘을 말하는데,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는 건 위력의 내용에 충분히 맞아 떨어지고, 판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업무방해죄의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으로,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아니하므로, 폭력·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등도 이에 포함되고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5732 판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상의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대법원 1998. 1. 23. 선고 97도2506 판결

 


판례에서 말하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이게 흔히 말하는 위계질서를 내세워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딱 맞지 않는가. 실제로 위에 두 번째로 든 97도2506 판례 역시 피고인이 유치원 원장으로서 그 원장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유치원 교사 또는 채용 예정된 사람들을 추행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뭔가 저지르는 것은 보통 '위계에 의한 XXX'가 아니라 '위력에 의한 XXX'에 해당할 것이다.

즉, 형법은 이런 위계질서를 내세우는 것을 수단으로 하는 경우를 ‘위력’이라는 구성요건으로 정리하고 있다. 

 

 


위력과 위계의 취급은 대부분은 비슷하다

이처럼 위계질서를 내세우는 것이 형법상으로는 위계가 아니라 위력이긴 한데, 사실 위력과 위계는 같이 묶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위계질서를 내세워 범죄를 저질러 위력에 의한 XXX가 되는 경우, 사실 그와 동일한 조항이 위계에 의한 XXX인 경우가 많다.

흔히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라고 하여 로스쿨생이든 변호사들한테는 익숙할 것이다. 밑의 형법 조문들을 보자.

 

 

형법
제253조(위계 등에 의한 촉탁살인 등) 
전조의 경우에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촉탁 또는 승낙하게 하거나 자살을 결의하게 한 때에는 제250조의 예에 의한다.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303조(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 
①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3조(신용훼손)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사람의 신용을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4조(업무방해) 
① 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조문에서 보듯이 위계 또는 위력은 같은 조문상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특수XX죄에 다중의 위력이 구성요건인 경우는 조금 다르니 제외). 입법자들이 둘은 비슷하다고 보기라도 했나보다. 그런데, 딱 하나 위계와 위력이 같이 묶여 있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 있다.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무집행방해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만 인정되고 위력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제136조 제1항에 폭행이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위력은 폭행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직접적인 폭행에 이르지 않고 소리지르고 난동 부리는 것을 위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공서에 와서 난동 부리는 것만으로는 공무집행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집행방해와는 달리 업무방해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인정되기 때문에 위력으로 공무집행방해 한 경우 공무집행방해는 인정되지 않으나, 공무도 업무의 일종으로 보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가 수험상 형법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결론
1) 형법상 “위계에 의한 ~”는 속임수를 말하는 것이다.
2) 위계질서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위력에 의한~”에 해당한다.
3) 형법상 위력이나 위계나 취급은 대부분 비슷한데, 공무집행방해는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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