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눈사람 판결

Glox 2024. 12. 1. 18:57

 

 


예전에 눈사람을 부수거나, 눈사람을 부수면서 다치는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 문제에 관한 글을 썼었다. 최근 11월 말인데도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큰 폭설이 와서 그런지 다시 눈사람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이 만든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에 관한 논란과 논쟁이 벌어진다.

예전에 썼던 글처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남이 만든 눈사람을 부수는 것도, 눈사람을 부수면서 다치는 것도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은 낮다. 글을 쓸 당시에는 명시적인 판례는 없지만 법리적으로 그 결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정말 눈사람 파괴와 관련하여 판례가 없었을까 궁금해졌다. 자기가 만든 눈사람을 부순 것을 가지고 재물손괴로 고소하거나, 안에 돌이 들어있는 눈사람 부수다가 다쳐서 만든 사람에게 피해를 배상하라고 소를 제기하거나 과실치상이라고 고소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눈사람 부수기에 관한 판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판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형 판례 검색 사이트인 엘박스에서 “눈사람”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해보면 판례가 27개밖에 검색되지 않는데, 대부분의 판례는 “눈사람 모양”의 디자인을 가지고 다투는 특허나 저작권 분쟁이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실관계가 포함된 판례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사건은 민사소송이나 형사재판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뜻밖의 눈사람 판결

그런데 눈사람을 키워드로 검색하였다보니 사건의 사실관계는 눈사람과 아무 상관 없지만 판례 문구에 눈사람이 포함되어 있어서 나온 판례가 있었다. 엉뚱하게도 형사사건인데 죄명은 살인이었다.

사실관계는 아들을 낳았던 피고인이 남편과 불화가 심해지자 아들과 함께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2세 아들을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해서 살인죄로 기소되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만 살펴보면 특별하지는 않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왜 눈사람이 언급된 것일까.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2세밖에 안되는 아이를 살해하였으므로 징역 4년에 처해졌다(피고인이 항소 및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일반적으로라면 선고만 하고 끝나는 것인데 이 판결에서는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이 비극적 범행에 이른 경위를 꼼꼼히 기록하고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 이러한 범죄의 원인과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이와 같은 참담한 범죄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아래와 같이 양형의 이유를 상세히 부기한다.”며 아주 긴 양형 이유를 따로 밝힌다.

피고인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가정폭력 등의 원인으로 이혼한 사실이 있었고 이후 재혼 생활 중에서도 배우자가 외도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하여 우울증을 겪었다. 피고인의 부모도 피고인이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별거하여 피고인은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자랐다. 

이후 판결문은 살해 후 자살에 관한 기사를 인용하며 그 원인과 대책에 관하여 말하고, ‘마치며’라는 문단으로 아동을 보호하여야 하는 이유와 이 사건처럼 살해 후 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는 점을 확실히 밝힌다. 동시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요구하면서 형사재판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의 아동학대를 방지할 수 없고 단지 사후적으로 단죄할 뿐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짚는다. 

마지막으로 사망한 아이를 추모하며 위의 ‘눈사람’이 들어간 내용이 나온다.

 

 

반복되는 이런 범행을 볼 때마다 당원은, '청테이프가, 번개탄이, 졸피뎀이, 수면유도제가, 감기약이, 찢어진 약봉지가, 빨랫줄이, 둥글게 말아 쥔 손아귀가, 열려진 옥상문이, 갑작스런 고급 햄 반찬이, 분에 넘친 장난감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계획에 없던 가족여행이, 혼자 남겨진 인형이, 발에 묻은 그을음이, 부러진 손톱이 두렵다. 우리의 망각과 무덤덤함이 무섭고 또 무섭다. 어떤 이의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이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아이를 키우는 세상 모든 어머니가 아이에게 할 말은 응당 이러해야 한다. (…) 눈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 백지 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 /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 네가 바라보는 하늘 / 네가 마음껏 뒹구는 땅이 /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 (렴형미, <아이를 키우며>)

아들이 됐어야 할 눈사람도, 바라보고 뒹굴었을 하늘과 땅도, 평생 심장에 품고 살았을 사랑도, 푸른 이 땅의 아름다운 모든 것도 아들의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엄마가 아이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약 먹어라, 문 꼭 닫아라, 자자, 좋은 곳으로 같이 가자'가 되는 세상은, 얼마나 비통하고 또 비통한가.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할 순 있지만,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나를,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폴 오스터 <달의 궁전>)." 폴 오스터의 말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인에 대한 연민 외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절망과 고통에 맞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애로 서로 깍지 낀 두 손만이 최후이자 최선의 안전망이다. 우리가 안전망이다.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142 판결

 






법률 문서는 글로 써져있지만 일반적인 글이 아니다. 설명서나 보고서 같은 것이라 흐름도 전체적인 연출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변호사들도 자신이 이해에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서 읽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흐름을 느끼며 읽는 일은 잘 없을 것이다. 눈사람 관련 판례를 찾으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한편의 에세이를 하나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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