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모독죄의 제한된 구성요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3398935?sid=102
며칠 전 태극기 불태운 사진을 인증한 게시물이 이슈가 된 걸 본 적 있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 흔히 제식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자국혐오 및 비하적 정서가 주류를 이루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 갤러리에 올라오는 게시물 중 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지만 이 사건은 꽤 심각해 메인 뉴스도 탔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들 국기모독죄 얘기를 하면서 국기모독죄 처벌을 촉구했다. 이 사건은 ‘국기’를 ‘불태워서 모독’한 것으로 보이니 당연히 국기모독죄가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로스쿨 다니면서 쌓인 경험의 지혜는 법적인 쟁점을 보았을 때 기존에 갖고 있는 막연한 생각에 비추어 ‘당연히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법전부터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형법 제105조 (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문을 보니 태극기를 불태우는 등 손상하는 모든 것을 처벌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라는 구성요건이 있다. 구성요건으로 특정한 목적을 요구하는 이른바 목적범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없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은 국기모독죄로 처벌되지 않는다. 위 사례의 경우 태극기를 ‘센극기’라고 표현한다든지, ‘태극기가 반일 센뽕을 세뇌시킨다’든지 모욕 목적이 비교적 뚜렷한만큼 경찰이 수사하여 잡는다면 적용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디시에 글 올리다가 경찰서 가는 사람들이 그렇듯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집회에서 불태운다면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신념과 용기는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관심 끌려다가 인생 꼬이게 될듯 하다.
위 사례야 대한민국 모욕 목적이 잘 드러났으니 별 문제 아닐텐데,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된 판례가 있었다.
‘대한민국 모욕 목적’이 쟁점이 된 거의 유일한 사례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피고인이 경찰 버스에 있던 종이 태극기를 불태운 사건이었는데, 피고인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항의할 목적으로 태극기를 불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고, 상고기각 되었다. 결론은 국기모독죄 부분은 무죄였다.(같이 공소제기 된 일반교통방해, 해산명령불응, 공용물건손상은 유죄였다.)
-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2. 17. 선고 2015고단6516, 2015초기3430 판결
1심은 ‘피고인에게 대한민국을 모독할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보았다. 즉 목적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국기를 불태운 행위는 명백했지만 대한민국 모독 목적이라는 구성요건요소가 쟁점이 된 것이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그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실관계요소들을 여럿 들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굳은 신념에 차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알고서도 대한민국을 모독해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려는 그런 행위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저지르고 놀란 그런 사람의 모습을 보여 모독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행위로 본 듯 하다. 여튼 증명이 불충분한 것이므로 모독 목적이 ‘없다’가 아니라 ‘인정하기 어렵다’ 였다.
견해에 따라서는 피고인의 주장이 꽤나 궁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죄의 성립은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고 검사가 입증에 실패하면 의심스러워 보여도 쉽게 인정할 수 없다. 범죄의 구성요건요소 중 목적과 같이 개인의 내적 부분에 관한 것을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요소라고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원래 입증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관련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입증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그 사실관계들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 2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7. 10. 선고 2016노833 판결) 및 3심(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20도9755 판결)
2심 역시 검사 제출 증거로는 ‘대한민국을 모독할 목적’을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로 증명할 수 없다고 보아 1심과 같은 취지로 보았고 3심도 상고기각하여 확정되었다. 즉 이 사건에서는 대한민국 모독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았다.
국기모독죄와 표현의 자유
이 사건은 위 형사사건에서 그치지 않고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위헌심사형 헌법소원까지 이루어진다.(헌법재판소 2019. 12. 27. 선고 2016헌바96 전원재판부 결정)
만약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여 국기모독 행위를 금지·처벌하지 않는다면, 국기가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와 체면이 훼손되고 국민이 국기에 대하여 가지는 존중의 감정이 손상되며 국민을 극단적 대립과 갈등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국기모독 행위를 경범죄로 취급하거나 형벌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제재하여서는 입법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형법 제정 이후 국기모독죄로 기소되거나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으며, 심판대상조항의 법정형은 법관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양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합헌인 다수의견의 논조는 대한민국 모독 목적 국기 손상이 국가를 해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이를 상징하는 국기에 대한 다른 국민의 존중 감정이 손상되어 사회적 갈등이 우려된다고 보는 것 같다. 합헌의견은 이와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가 적절한 수준이므로 합헌이라고 본다. 그러나 국가가 비판이나 정치적 반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경멸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여담
헌법재판소 합헌의견에서는 형법 제정 이후 국기모독죄로 기소되거나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정말 케이스노트에서 검색해보니 판례가 11개 뿐이었다. 그중에 4개는 위에서 다룬 사건의 3심과 헌재 판례였다. 대부분은 하급심 판례고 대법원 판례는 상고기각을 했을 뿐인 위 사건 판례 1개였다.
사실 일반적 도덕감정으로는 굳이 태극기를 불태울만한 일이 잘 없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우발적으로 격분해 무언가를 부수고 불태우는 일이 있어도 주변에 손에 잡히는 것을 부수고 불태우지 그렇게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황에서 아마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을 태극기를 꺼내 불태울 일도 잘 없을 것이다. 국가가 자신을 화나게 하여도 그 분풀이의 대상이 구체적 물건이 태극기로 옮겨가서 불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흔히 있을만한 일은 아니다. 그 흔치 않은 일을 자국비하로 유명한 디시 갤러리 어그로 유저가 이루어내는 일을 보다니 역사의 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