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기레기'라고 하는건 모욕죄가 아니다?

Glox 2025. 1. 6. 23:5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8176.html

 

“기레기”는 죄가 없다…대법, “기레기” 댓글에 “모욕죄 아냐”

자동차 기업 홍보성 내용이 담긴 인터넷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모욕적 표현이 담긴 댓글을 달았어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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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번 돈 이후로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이 아니다', '기자한테 기레기라고 해도 무죄다' 같은 인식이 생겨난 것 같다. 판결 관련 기사는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게, 제목만 읽고 꼼꼼히 읽지 않으면 판결을 오독한 것이나 다름 없고, 꼼꼼히 읽어도 판결 기사는 결론부만 강조하거나 그 결론부조차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판결 취지를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도 소개하겠지만 '기레기' 관련 판례들은 단순히 '기레기'란 표현이 모욕죄가 된다, 아니다로는 요약할 수 없는 법리 구성을 하고 있는데 기사들은 대부분 '무죄'만 강조하기 때문에 오해할 여지가 있다. 오히려 대법원은 일관되게 "'기레기'란 표현은 모욕적 표현이 맞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표현이 나온 경위와 맥락을 고려해서 구체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모욕죄 판결 동향 글처럼 결국 표현의 전체적인 맥락이 중요하다.

 

대법원의 '기레기' 판결

 

대법원에서 '기레기'란 표현이 문제된 판례는 3개 정도인데 내용이 꽤나 재밌다. 그리고 그 3개의 판례 모두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이라고 보아 모욕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정한다. 다만, 그 표현이 나오게 된 맥락이 기자가 비판받을 수 있는 행태를 보였고 이에 대해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기에 이는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서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1.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717643 판결

기자가 광고성 기사를 쓰자 "이런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댓글을 단 사건

 

‘기레기’는 기자인 갑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나,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7도17643 판결

 

이처럼 대법원은 '기레기'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는 보았으나, 기사가 올라오기 전 특정 제조사의 자동차 부품의 안전성 논란이 있었고 다른 언론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하였는데 이 사건의 기사는 옹호하는 내용이었고, 독자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기사와 기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론 보도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었기에 비판 의견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기레기란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어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2.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11264 판결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선일보 기자의 실명과 사진 캡쳐가 있는 글이 올라오자 "좃선일보 기레기놈들 여기 많이 상주하나 보네yoㅋㅋㅋ 기사 쓸려면 심층적인 취재를 해 사이트 관음이나 하지 말고 쓰레기 같은 것들아(반말주의)ㅋㅋ" 라고 댓글을 단 사건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에서 기재한 '좃선일보는 '조선일보‘를 남성의 성기에 빗대어 저급하게 표현한 것이고,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서 기자들 또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하한 용어이므로 조선일보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고, '쓰레기 같은 것들아' 역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도11264 판결

 

위와 마찬가지로 기레기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는 점은 인정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 역시 피고인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일에 관하여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면서 사실확인을 다소 게을리한 측면이 있었고, 기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게시글에는 기사에 대한 반박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고인도 역시 그러한 반박을 하면서 저런 표현을 쓴 것이었기에 대법원은 피고인의 비판이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사실관계에 기초하고 있을 뿐더러 위 판례와 마찬가지로 비판 의견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3. 대법원 2024. 4. 25. 선고 20226987 판결

 

페이스북에 특정 기자를 지칭하여 "거물급 기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사건

 

이 사건 표현이 언론인인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
대법원 2024. 4. 25. 선고 2022도6987 판결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피해자가 자신과 관련된 기사의 보도는 회피하고 있었고, 오히려 피해자가 피고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의혹을 다시 한번 제기하고 피해자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작성하면서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위 3개 판례를 보면 알겠지만, 판례는 명시적으로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표현이 단순히 아무 근거도 없이 모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자의 행태나 기사에 비판할만한 점이 존재하였고 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기레기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면 그건 비판을 강조하는 정도의 표현에 불과하여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다.

 

결국 단순히 기레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여부만으로는 모욕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데다가, 대법원이 맥락을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히 이상하지도 않은 기사에다가 단지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기사나 기자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기레기'라고 하는 건 오히려 모욕죄가 성립될 여지가 높고, 실제로 하급심 판례 중에는 모욕죄가 인정된 사례들이 있다.

 

'기레기'란 표현으로 모욕죄가 인정된 사례들

 

1.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21. 11. 30. 선고 2021고정90 판결 

"XX일보 여기자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다가 보테크(Vo-Tech)열심히 하시네..정말 아주 전문가여.. 보테크 이거 모니터링 다 하나봐??ㅋㅋ 요즘 기레기들은 시간이 남으니깐 뭐”라는 댓글을 작성한 사건

 

피고인은 보테크가 " Vocational Technical(School)의 약칭"이라는 주장을 한 적도 있으나, 항소심은 이를 궤변이라며 까버렸고 성적인 비하단어라고 판단하고, 기레기도 모욕적 표현으로 인정했다. 양형부당 주장에 대하여는 "피고인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청소년들이나 할법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까지 하기도 한 건 덤.

(2심 및 3심에서도 결론은 변하지 않아 유죄로 확정되었다. 창원지방법원 2022. 7. 7. 선고 2021노3282 판결, 대법원 2022. 8. 23.자 2022도8927 결정)

 

2.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21. 10. 13. 선고 2021고정110 판결 

인터넷에 “C언론 D기자님! E D기자님! (중략) 그래서 제가 D기자님을 기레기라고 하는 겁니다.(중략) 기레기들이 하는 방식으로 소설 쓰지 마시고!”라는 글을 올린 사건

 

(중략)된 부분에는 정당한 반론으로 볼만한 내용도 있어서 그 부분은 범죄사실에서 빠졌지만, 저 표현 뒤에는 ‘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D 기자님 보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지 그 마음 이제야 할 것 같소. 나도 어쩌다 똥 밟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더럽네요. 폐친분들께는 본의 아니게 피곤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곧 똥 묻은 거 깨끗이 닦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개레기는 무서워서 짖는게 아니고 두려워서 짖는다고 하더만요” 내가 겁이 많아요 에고 무시라 ㅋㅋ’라는 내용이 이어져 기레기라는 표현의 맥락이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하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고 보아 위법성 조각 사유는 없다고 보았다.

 

3.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23. 1. 26. 선고 2022고정169 판결 

인터넷에 신문사 대표 기자인 B에 대하여 "명심해라 B 대표 넌 기레기 사퇴해라”라는 글을 올린 사건

 

맥락을 살펴보아도 위 글이 어떤 사실관계에 기초하였다거나 어떠한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위법성 조각 사유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례들을 보면 결국 먼저 기자나 기자의 기사가 비판받을 거리가 있어야 하고, 이와 관련된 사실에 기초하여 비판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나 기레기라는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지 그냥 그 기자가 싫어서 또는 마음에 안 들어서 욕하는 용으로 기레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충분히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

 

‘기레기’는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고...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7도17643 판결 및 대법원 2024. 4. 25. 선고 2022도6987 판결

 

흥미로운 것은 대법원도 '기레기'라는 표현이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 것이다. 사실확인을 게을리하거나 편파적인 입장에서 쓴 기사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라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있다고 볼 수 있으며, 기레기라는 표현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파생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 같다. "X발"과 같은 순수한 비속어는 그것에 비속어 외에 다른 뜻이 없다. 그런게 기레기란 표현은 순수한 비속어와 추상적 개념의 중간 지대, 즉 문제적인 기자의 행태를 비교적 험하게 요약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기레기란 표현에는 경멸만 있는게 아닌 것이다. '맞을만 해서 맞았다' 라는 논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부분은 기자들 스스로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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