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부패세력 판결의 추억과 모욕죄 최근 판결 동향
피고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갑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게시하면서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 극우부패세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갑을 모욕하였으나, 피고인이 갑의 공적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게시글을 작성하면서 위 표현을 한 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0도16897 판결
이 판례는 특별히 기억하고 있고 나름의 추억이 있는 판례이다. 로스쿨생들은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최판이라는 것을 본다. 최판은 ‘최신판례’의 줄임말인데, 보통 시험 전 3년간 선고된 판례들을 일컫는다. 최신판례들을 따로 보는 이유는 최근 선고된 판례들은 비교적 출제 가능성이 높고 복잡한 정도의 쟁점은 아니더라도 객관식 영역에서 사실상 OX를 묻는 지문으로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로스쿨 3학년생들이 최판을 보는 시기는 수험 스타일마다 다르나, 나는 여름방학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최판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 때 위의 ‘극우부패세력’ 판례를 본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극우부패세력’ 정도의 워딩이면 모욕죄 성립되고 유죄란 결론이 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판례는 맥락을 강조하면서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았다. 위법성 조각이란 법죄 성립의 단계 중 형법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하기는 하나(구성요건해당성) 법질서가 그러한 행위라도 특별한 사유가 존재하여 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정당방위, 긴급피난 등이 있고 위에서 본 것처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인 때 등이 위법성이 없다고 본다.
판례는 ‘극우부패세력’ 같은 말은 모욕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공적인 문제 등에 관하여 토론하다가 나온 것으로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밤 흥미로운 판례를 찾았다며 룸메에게 이 판례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 직후 8월 모의고사에 이 판례가 출제되었다.
객관식 문제의 선지 중 하나로 나왔는데 워낙 인상깊은 판례인데다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문구다 보니 곧바로 판단했고 그 선지가 정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문제는 맞추었다.
모욕 해당 여부를 좁게 또는 위법성 조각을 넓게 보는 최근의 판결 동향
모욕죄는 논란이 많은 죄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입막음용으로 남발된다는 비판도 있는 반면 혐오표현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극우부패세력’ 판례의 추억이 떠올랐는데 ‘극우부패세력’이라는 키워드가 기억이 나지 않아 모욕죄 판례들을 찾다보니 최근 대법원은 특정 표현이 모욕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좁게 보거나 또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더라도 위법성 조각사유를 넓게 보아 모욕죄 성립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모욕죄 성립에 관한 최근의 방향성에 동의한다. 모욕죄는 개인의 명예 감정이 아니라 외적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 피해자가 기분이 나빠져서 모욕적이라고 느낀다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욕적 행위로 인하여 제3자가 보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떨어질 때 처벌하는 것이다. 그래서 1대1 대화 중의 모욕적 발언에는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로서, 여기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표현이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하는지는 상대방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나 정서상 어떠한 표현을 듣고 기분이 나쁜지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방법, 당시 상황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어떠한 표현이 개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거나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이 아니라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예의에 벗어난 정도이거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 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나타내면서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이나 욕설이 사용된 경우 등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으로 볼 수 없어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개인의 인격권으로서의 명예 보호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는 모두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 각자의 영역 내에서 조화롭게 보호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해석 · 적용할 때에도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도2229 판결, 대법원 2022. 8. 31. 선고 2019도7370 판결 등
단순히 상대방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고 하여 모욕죄의 성립을 인정해버리면 상대방에 대한 비판까지 봉쇄될 수 있다. 상대방과의 논쟁이 격화되다 보면 강하게 비판하기 위해 비유나 추상적인 표현 등이 동원될 수 있고 그것은 단순한 모멸적 표현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물론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순수하게 비난을 위한 욕설인 경우는 이 논의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그러한 표현이 나온 맥락을 유의깊게 보고 모욕죄의 성립 여부를 엄밀하게 판단한다.
표현이 다의적이거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신조어인 경우 피고인이 그러한 표현을 한 경위 및 동기, 피고인의 의도, 표현의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 등을 고려하여, 그 용어의 의미를 확정한 후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표현이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때에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가 성립한다. 이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지위와 그 관계, 표현행위를 하게 된 동기, 경위나 배경,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와 구체적인 표현방법, 모욕적인 표현의 맥락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17도19229 판결
이 판례는 모욕죄 성립을 인정한 판례이긴 하나(소위 국민호텔녀 판례), 성립의 판단 이전에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지 여부 모두에 관하여 맥락을 강조하였다.
어떤 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도 그 글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그 사실관계나 이를 둘러싼 문제에 관한 자신의 판단과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자신의 판단과 의견이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등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표현도 지나치게 모욕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다면 마찬가지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0도16897 판결
동일한 취지에서 모욕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분쟁 중에 상대방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모욕 등은 아래의 사례들처럼 애초에 모욕적 표현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최근 판결 동향으로 보인다. 보면 키워드만으로는 충분히 모욕죄 성립할 것 같은데 인정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 흥미롭다.
사례들
대법원 2024. 10. 8. 선고 2022도15971
사건 :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도적X’, ‘양두구육의 탈’, ‘법의 심판을 통해 능지처참’,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자질 없는 인간’, ‘무책임한 인간’, ‘적반하장의 극치’, ‘비열하고도 추악한 행태’,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 ‘악랄한 집단’ 등의 표현 표현이 포함된 글을 올림
법원 :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와 조합원들이 갈등을 겪는 와중 일부 조합원들로 이루어진 비상대책위원회 회원인 피고인이 추진위원장의 불법사실을 알리기 위해 올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저 표현들이 포함된 글은 부정적ㆍ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이 담긴 글에 해당하는 정도라고 보아 구성요건해당성 부정(명시적으로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고 하진 않았으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 아니라고 보았으므로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는 것으로 본 것으로 추정됨)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3도11264 판결
사건 : 인터넷 커뮤니티의 기자의 인적정보가 담긴 기사 캡처 글에 "좃선일보 기레기놈들 여기 많이 상주하나 보네yoㅋㅋㅋ 기사 쓸려면 심층적인 취재를 해 사이트 관음이나 하지 말고 쓰레기 같은 것들아(반말주의)ㅋㅋ"라고 댓글을 담
법원 : ‘좃선일보’ ‘기레기’ ‘쓰레기 같은 것들아’ 등의 표현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기는 하나, 그 기자가 피고인이 있는 커뮤니티의 사건을 보도한 것인데 피고인이 이에 대하여 사실과 다르고 기자가 사실관계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기사를 작성하였다는 것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봄
이와 관련해서는 ‘기레기’ 관련 판례들도 많은데 이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려 한다.
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도4719 판결
사건 : 피고인이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피해자의 얼굴에 ‘개’를 합성함
법원 : 피해자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동물 그림을 사용하면서 갑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도 상당, 피해자가 불쾌할 수는 있어도 모욕적 표현은 아니라는 점에서 구성요건해당성 부정(추정)
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19도14421 판결
사건 : 지역버스노동조합 조합원인 피고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집회 일정을 알리면서 노동조합 집행부 갑, 을을 지칭하며 “버스노조 악의 축, 갑과 을 구속수사하라!!”라는 표현을 적시함
법원 : 노동조합 조합원은 노동조합 내부 문제에 대해 비판활동을 할 권리가 있고, 그 비판적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위 표현이 사용되었고, ‘악의 축’이라는 용어는 의견이 다른 상대방 측의 핵심 일원이라는 비유로도 사용되고 ‘구속수사하라’는 것도 의혹에 대한 적절한 수사 촉구일 뿐이라 모욕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 구성요건해당성 부정(추정)
대법원 2022. 8. 31. 선고 2019도7370 판결
사건 : 우체국 사업소 소장인 피고인이 직원들에게 다른 사업소 소장이었던 민주노총 지부장의 사업소 문제를 지적하면서 “민주노총 지부장은 정말 야비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는 카카오톡을 보냄
법원 : 우체적 사업소들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경쟁 관계가 있었는데 다른 사업소의 한국노총 소속 사업소 소장이 해고된 것을 두고 피해자 민주노총 지부장이 그 사업소 직원들에게 그 소장의 횡령 사실과 추가 고발하겠다는 카카오톡을 보내자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피고인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정도의 표현은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의견에 불과하다고 보아 구성요건해당성 부정(추정)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7988 판결
사건 : 피해자의 페이스북에다가 “고소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불만이면 또 고소해라. 남자새끼가. 다 걸고 하는 거지? 배은망덕한 새끼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 사람새끼가 내뱉을 소리가 있는 거고, 못할 소리가 있는 건데 너 같은 새끼가 감히. 못할 소리 배은망덕한 소리 내뱉었으면” 이라는 댓글을 달음.
이건 사실관계가 좀 특이해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피해자와 피고인은 같은 지역 출신으로 겹지인이 꽤 있는데, 정작 피해자와 피고인은 페이스북 친구 정도이고 실제로 알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피해자 페이스북에 제3자의 아이디로 피해자를 욕하는 댓글이 달리자 피해자는 “피고인이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제3자 아이디로 나를 욕하는 댓글을 단다.”고 게시물을 올려 저격을 해버린다. 심지어 피고인을 두고 '거지발싸개 같은 지저분함과 쥐새끼 같은 비열함으로 피해자의 페이스북을 분탕질하는 색휘'라고 하거나 아예 인적사항까지 까발린다.
피고인은 제3자 아이디로 욕하는 댓글을 단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사과하라고 항의하였는데 피해자는 오히려 "푸헐헐 ㅋㅋㅋ 그만 귀염떨고 자거라~~~", "호호호 웃기셔~~~", "심심한데 잘 됐다. 고소장 쓰고 있다. 더 귀염 떨어줌 이뻐해주지. ㅋㅋㅋㅋㅋ" 같은 댓글을 남겼다.
피고인은 항의 댓글을 계속 달면서 위에서 언급된 “고소해 싸가지 없는 새끼야.”로 시작되는 댓글을 남겼다.
법원 : 위와 같은 맥락을 고려해서 피고인의 글들은 진위 파악도 없이 피고인을 비방댓글 작성자로 몰아간 피해자에 대하여 화나는 감정을 표출하고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보아 아예 모욕적 표현이라고 보지도 않아 구성요건해당성을 부정.
참고로 이 사안에서 피해자는 피고인 저격하는 글들로 정통망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다.
결론
이처럼 2020년 이후의 최신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순수한 경멸적 표현이 아니라 1)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미 갈등이나 논쟁 관계에 있었고 2) 그로 인하여 피고인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 다소 모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면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대법원이 밝힌 내용처럼 기계적으로 표현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중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