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감경에 대한 단상
주취감경
이 4글자 단어를 보면 대부분은 ‘솜방망이 처벌’을 떠올릴 것 같다.
“또 술먹었다고 감형해주겠지”,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질렀으면 오히려 엄벌해야 한다.” 같은 댓글은 뉴스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취감경에 대한 반감이 깊어진 것은 아마도 2008년 조두순 사건이 결정적일 것이다. 법원은 이 때 조두순이 당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하고 12년을 선고하였는데, 그 때문에 여론이 들끓었다.
이 때문에 사회에서는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술마시고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해서 감형받는다는 인식이 생겼고(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실제 통계는 인식과 다르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기도 한데 감형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범죄자들이 심신미약 주장을 많이 할 것 같기는 하다.) 주취감경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법조계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주취감경의 폐지 부분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이는 형법의 원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취감경의 법적인 근거
형법
제10조 (심신장애자)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③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우선, 별도의 주취감경이라는 제도는 없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한 능력이 없는 사람(심신상실)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경우(심신미약)에는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한다.(원래는 “감경한다”였지만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되었다.)
이러한 규정을 두는 이유는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국가가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형법 총론에서 각종 학설이 대립하고 있지만, 나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파악하고(사물변별능력)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의사결정능력) 적법한 행위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황에서 한 행위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행위일 수는 있어도 온전히 그 행위자에게 책임을 지울수는 없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법 제10조는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고, 주취감경은 이에 따른 도출이고 별도로 주취감경을 따로 규정해두는 것은 아니다.
주취감경에 대한 반감
이런 형법 이론에도 불구하고 주취감경에 대한 반감은 ‘술을 마셨으면 오히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통념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신 장애와 달리 음주는 자기의 선택이라는 점이 그 근거가 될 것이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이고, 당연히 그로 인한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술을 마시면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술을 마신 사람에게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더 책임을 져야한다는 기대가 따르게 되므로 그와 반대되는 주취감경에 대해서는 반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형법적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와 그 후의 범죄 행위는 별개로 평가되기에 음주 후의 범죄라도 형법 제10조는 적용될 수 있다. 취한 상태에서는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되어 온전히 자신의 의사로 범죄행위를 한 것은 아니어서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술을 마실 당시에는 범죄를 일으키겠다는 고의가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 원칙)
결국 현재 형법의 원칙 하에서 주취감경만 없애는 건 이론적으로 큰 예외를 두는 것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취감경이 절대적인 면죄부는 아닌 것이, 단순히 술을 마셨다고 해서 주취감경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심신미약 여부는 종합적인 판단에 따름), 애초에 범죄를 위해서 술을 마신 경우라면 위의 제10조 제3항이 적용되어 감경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음주 문화와의 아이러니
이처럼 우리 사회는 술로 인한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주취감경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비판한다. 그런데 동시에 술자리를 소통의 장으로 찬미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자랑하며, 술에 취해 벌어진 해프닝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술에 취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주사를 주인공의 속마음, 인간적인 매력 등으로 부각한다. 물론 그 주사를 전부 위의 범죄행위와 동치시킬 수는 없는 것이지만 드라마 등에서 표현하는 ‘무해한 일탈’인 주사에는 난동이 포함되거나 누군가에게 업혀가 민폐를 끼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위에서 보았던 ‘술을 마셨으면 오히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통념과는 다소 충돌되는 부분은 아닌가.
우리 사회가 과음과 주사에 대하여 관용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드라마를 알게 되었을 때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이 드라마가 음주를 조장한다거나, 음주에 대하여 관용적으로 표현하였으니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미디어는 이미 형성된 사회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지 미디어가 먼저 사회 인식을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음주와 그 행동에 대하여는 관용적이라는 현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이 드라마는 그저 그걸 드러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https://youtu.be/uUphavKUN5A?si=L4-o9a6_6ViEWEnm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영상의 썸네일이 “어젯밤 개가 된 나”, 제목이 “술자리 흑역사”로 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만취 후 행동에 관한 것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할 정도로 관용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사법 영역에 있어서 주취감경을 비판하면서도 음주에 대한 관용적인 우리 사회의 태도는 다소 모순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오히려 이 모순적인 태도가 주취감경에 대한 비판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술 마시고 한 일이니 ‘봐준다’
우리 사회가 취해서 한 일들을 해프닝으로 넘기고 웃긴 일로 치부하지만 정말로 그 행동들이 기쁘고 즐거운 일인 것은 아니다. 취해서 한 행동은 누군가 수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술 마시고 한 일이니까 ‘봐준다’ 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가볍게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인식이 있다면 주취감경에 대해서도 책임주의 원칙,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 원칙, 형벌권 행사의 필요성, 고의 범죄와 심신미약으로 인한 범죄를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 등과는 상관 없이 “법원이 술을 이유로 범죄자를 봐준다.”고 인식할 수도 있기에 비판적인 것은 아닐까. 기대 속 법정은 엄정해야 하는데 형법 원칙에 따라 감경되는 것이 아니라 근거도 없이 판사가 임의적으로 봐준다고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단상
주취감경을 판사가 마음대로 봐주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비판적일 수도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고찰에 불과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음주에 관대하다는 것이 처음의 아이디어였는데 생각이 뻗어나가다보니 나온 것이다.
주취 범죄의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가해자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변명으로밖에 안 보이고 주취감경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주취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음주에 대하여 덜 관대하고 술에 취해 한 행동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