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 생각

사유지 무단침입죄로 고소한다?

Glox 2024. 8. 5. 16:16

사유지 무단침입죄로 고소해야 한다!”

남의 땅에 누군가 함부로 들어왔다는 사건이 보도되면 이런 반응이 인터넷 댓글창을 가득 메우곤 한다. 무슨 의미인지는 대충 알 수 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1) 우리 형법에 사유지 무단침입죄라는 죄목은 없고

2)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의 땅에 허락 없이 들어오는 행위만으로는 주거침입죄가 쉽게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단침입에 관한 법은 주거침입죄

 

우리 형법상 무단침입죄라는 죄는 없다. 그러나 구글 검색 사진처럼 무단침입죄라는 말은 자주 쓰이는데, 이는 형법 제319조 제1항의 주거침입죄를 가리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퇴거불응)
①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우리 형법상 함부로 남의 공간에 침입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의 명칭은 정확히는 주거침입죄이다.

 

형법상 명칭은 주거침입죄이지만 조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주거에 침입하는 것만을 처벌하는 것은 아니고 그 외의 건조물, 선박과 항공기, 방실 등에 침입하는 것도 처벌한다. 그래서 죄명예규에는 사안에 따라 각 (주거, 건조물, 선박, 항공기, 방실)침입이라고 구분되어서 나온다.

 

그런데, 조문을 읽으면서 의문점이 들 수도 있다.

 

사유지 무단침입을 처벌하는 것이 맞나?

 

 

 

주거 등과 관련 없는 일반 토지의 경우

 

길 가다가 저런 표지판을 가끔씩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과연 저 내용대로 법적 조치가 있을 수 있을까?

 

주거침입죄의 조문을 살펴보면 주거, 건조물, 선박과 항공기, 방실(이하 주거 등)에 침입하는 것을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흔히 사유지라 하면 땅, 즉 토지를 말한다. 건물은 토지와 구분되는 것이고 건물을 사유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유지의 사전상의 정의도 이고.

 

그런데 형법상 주거침입죄는 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처벌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주거침입죄 조문에서는 분명히 주거 등에 침입하는 것을 처벌한다고 하지 사유지에 침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즉 주거침입죄는 주거 등과 단순한 사유지를 구분하고 있다. 주거침입죄는 사람이 기거하며 활동하는 공간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나 건물뿐 아니라, 사람이 이용하는 선박이나 항공기, 방실까지 주거 등에 포함된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의 소유이기만할 뿐 사람이 기거하며 활동하는 장소가 아닌 땅은 이와 다르므로 단순히 타인의 토지에 발을 들였다고 해서 주거침입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땅에 침입하는 것으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위요지(圍繞地)라는 개념으로, 이 개념에 따라 주거나 건조물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토지에 침입하는 것은 주거침입죄에 해당하고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어도 대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 담장과 집 방 사이에서 방 안을 엿보는 행위가 주거침입죄로 처벌된 판례도 있다.

 

이미 수일 전에 2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강간하였던 피고인이 대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 담장과 피해자가 거주하던 방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창문을 통하여 방안을 엿보던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주거에 대한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된 것으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은 정당하고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1도1092 판결

 

 

그러나 위요지 개념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사유지 침입은 주거침입죄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위요지 침입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는 것은 위요지가 사실상 주거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위요지에 침입하는 것만으로도 주거 등에 침입한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위요지라는 단어 자체가 에워쌀 위()에 두를 요()로 주거 등의 부속이자 연장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요지에 들어온 것은 주거 등에 들어온 것과 큰 차이가 없기에 처벌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땅은 연속되는 것이므로 주거 등 주변의 토지라고 하더라도 경계가 확실히 표시되고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나지 않아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되는 것이라면 주거침입이 되지 않는다고 본 판례도 존재한다(200914643).

 

더 나아가서 위요지가 아닌 단순한 사유지에 들어간 것으로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판례도 있다.

 

건조물침입죄에서 침입행위의 객체인 ‘건조물’은 건조물침입죄가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점에 비추어 엄격한 의미에서의 건조물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에 부속하는 위요지를 포함한다고 할 것이나, 여기서 위요지라고 함은 건조물에 인접한 그 주변의 토지로서 외부와의 경계에 담 등이 설치되어 그 토지가 건조물의 이용에 제공되고 또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관리자가 일정한 토지와 외부의 경계에 인적 또는 물적 설비를 갖추고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더라도 그 토지에 인접하여 건조물로서의 요건을 갖춘 구조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토지는 건조물침입죄의 객체인 위요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도690 판결

 

 

판례의 논리는 위요지에 침입하는 것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는 것은 주거 등이 있기 때문인데, 그 토지에 주거 등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건 위요지가 아닌 단순한 땅일 뿐이고 그렇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도!(단 이 사례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업무방해죄는 성립되었다.)

 

결론적으로 1) 집 마당 등 근처 토지에 침입하는 것은 주거침입죄가 될 수 있지만 2) 집과 멀리 떨어진 논밭이나 공터 등은 허락 없이 누군가 들어온다고 해도 주거침입죄가 되기 어렵다.

 

 

 

왜 처벌해주지 않을까

 

인터넷에 올라오는 무단침입으로 화난 썰들 중 대부분은 누가 함부로 논밭에 들어온 이야기다. 아마 위에서 말한 위요지 포함 주거 등에 침입한 이야기는 거의 확실하게 경찰 출동하고 사회면 뉴스기사가 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사람들의 법감정으로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기들 논밭이나 사유지에 함부로 들어오기를 원치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무단으로 들어왔다면 불쾌감이 들 것이다. 그리고 권리가 침범 당한 것 같고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단침입자를 처벌해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주거 등의 근처 토지가 아니라 단순한 사유지에 들어온 것만으로는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단순 사유지 침입을 주거침입으로 처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침입죄는 재산 등이 아니라 주거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에 관하여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다수설은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이라고 보아 주거침입죄가 거주자의 사생활에 있어서 사실상 누리고 있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한다고 보며, 판례 또한 같은 입장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표현을 하고 있다.

 

주거침입죄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해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1도1092 판결

 

 

또한 형법에는 따로 표현은 없지만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주거침입죄와 비밀침해죄를 사생활의 평온에 대한 죄로 묶는다. 그렇다. 이 죄는 주거라는 사람이 안심하고 생활하며 사생활을 유지해나가야 할 공간에 침입하여 그 공간에서의 생활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지 사생활과 관련 없는 공간에서의 침입은 그 보호 대상이 아닌 것이다.

 

주거 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단순한 내 땅에는 누가 들어온다고 해서 나의 주거에서의 생활이 침해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순 사유지 무단침입은 주거침입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런 무단침입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논밭에 들어와서 농작물 훔쳐가는 것 등등. 그건 무단침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절도나 손괴 등의 행위가 문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과 함께 절도죄나 손괴죄로 처벌받도록 하여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dO2-GAF1IA

 

 

이러한 뉴스 보도를 보면 무단침입으로 처벌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보도도 헤드라인은 마치 무단침입 자체가 처벌 대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중간의 내용을 잘 보면

 

[이태림 / 제주동부경찰서 구좌파출소]

"(무단으로) 사유지 침입할 경우에 피해 보상 등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고. 농작물을 밟고 지나가거나 훼손하는 경우에는 형법상 재물손괴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라고 하고 있어 사유지의 침입 문제 자체는 민사적 문제이고, 침입의 결과 농작물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재물손괴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무단침입 자체가 처벌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경범죄처벌법은 있다

 

다만 경범죄 처벌법에는 사유지 무단침입을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될만한 규정이 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37. (무단 출입)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시설 또는 장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그러나 경범죄처벌법이 죄형법정주의 위반 및 도덕적 후견주의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 사실상 많이 사문화된 점, 경범죄처벌법 제2조가 이 법을 적용할 때에는 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이 법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한 점에 비추어 경범죄 처벌법이 적용될 가능성도 낮고, 문언을 따져보아도 철저하게 철조망이나 울타리가 둘러싸여있고 출입금지 표시가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지 않나 싶다.

 

  

몇가지 요약

1) 집이나 건물에 침입한다

- 틀림없는 주거침입죄

 

2) 집 마당 등에 침입한다

- 위요지에 해당하여 주거침입죄 될 수 있음

 

3) 집과 멀리 떨어진 논밭 등에 침입한다

- 주거침입죄 될 가능성이 낮음

 

4) 가끔 들르는 별장 마당에 침입한다

- 주거는 기거침식에 사용되는 장소이기만 하면 되므로 별장이 본가와 멀리 떨어져있고 가끔 들르는 곳이어서 당장은 사람이 없어도 별장 마당에 침입하면 위요지에 해당하여 주거침입죄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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