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의 해임(하이브-어도어 분쟁)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653623?sid=103
아마 오늘 최고의 이슈이지 않을까. 기자회견 동안 바깥에 있어서 제대로 보진 않았지만 엄청난 이슈였던 것 같다. 분쟁이다 보니 법적 이슈까지 나오는데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 중에 변시에서도 자주 보이던 이슈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분쟁에 관한 깊은 내용은 알 수 없고 기사에 나온 내용들이 다르고 하니 판단하기는 어렵고 원론적인 내용을 분석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배임예비죄는 없다
기사에 따르면 하이브 측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한 정황을 포착하여 배임죄로 고발했다고 한다.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②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359조(미수범)
제355조 내지 제357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중요한 건 배임죄(민희진 대표이사는 사무처리자이니 업무상배임죄가 되겠지만 차이는 없다.)에는 미수죄는 있어도 예비죄는 없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밝혀진 대로 경영권 탈취에 관한 모의(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메모 한 수준도 모의라고 할 수 있다.)를 했다 해도, 그 계획의 실행에 착수하여 미수에 이르지 않는 한 배임미수죄가 성립하지는 않는 것이다. 실행의 착수에 이르려면 하이브 측이 주장하는대로 대외비인 계약서를 유출하거나 하이브로부터 주식을 인수하도록 다른 펀드와 접촉한 사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한 입증이 없어서인지 법조계에서도 배임죄 적용은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게다가 배임죄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재산상 손해의 경우 실제 손해뿐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이 발생한 경우도 포함하긴 하나, 구체적 위험이 발생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단지 막연한 가능성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까지 실행 가능한 계획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시도해봐야 금방 막힐 계획이라면 재산상 손해 발생 위험이 없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실제로 경영권 탈취 시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민희진 대표이사의 감정적인 대응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그것은 배임죄가 되지 않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배임죄는 임무 위배뿐만 아니라 '재산상 이익 취득' 또한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병렬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산상 이익 취득이 불가능하거나, 재산상 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이 임무 위배행위와 관련성이 없다면 배임죄가 성립하기 어렵다. 물론 그로 인한 손해는 배임죄가 아니라 계약상 혹은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배임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대표이사를 해임할 수 없을까?
상법
제385조(해임)
①이사는 언제든지 제434조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없이 그 임기만료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반가워서 글을 정리하게 되었다. 변시 상법 공부할 때 기억에 남고, 자주 나오는 쟁점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아무 이유 없이도 해임할 수 있다. 해임의 자유라고 하고, 대표이사 역시 이사이므로 이 법리가 적용된다. 정당한 이유 없이도 주주총회를 열어서 대표이사 해임 결의를 하면 그 대표이사는 해임된다. 그러나 이사가 너무 불리하므로 1) 임기를 정한 경우에 2) 정당한 이유 없이 임기만료 전에 해임한 때에는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해임 남용을 억제하고 이사의 손해를 보전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 임기를 정하여야 하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임기를 정하지 않았다면 그 대표이사는 해임되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2년 등 임기를 정했는데 그 전에 해임한다면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된 경우 대표이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그 정당한 이유가 뭐냐면
상법 제385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한 이유'란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1)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였거나 2)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3)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다25611 판결
이런 경우다. 이 판례도 두문자까지 따서 외웠던 판례인데 이게 떠올라서 반가웠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표이사와 같은 전문경영인은 주주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해임할 수도 있다. 다만 임기 전에 해임하면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해임하는 것까지 손해배상 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으므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의무가 없다. 위 판례는 그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설시한 판례이다. 또한 정당한 이유의 존부에 관한 입증책임은 해임된 이사가 부담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49570 판결) 잘린 측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잘랐으니 손해배상 하라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하이브 측은 경영권 찬탈에 관한 카톡 내용을 입수했다면 충분히 감사를 진행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사적인 농담으로 한 것이든 아니든 대표이사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말을 했다면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과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않아 배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갈등이 표면화되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상 어도어의 대주주인 하이브 측에서 민희진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물론 여론 문제는 남을 것인데, 그건 법적인 문제가 아니고 내가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타 세부사항들
1. 싸울 필요 없이 해임하면 끝나는 것이 아닌가?
법적인 권리의무 상 어도어의 대주주인 하이브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하다. 문제는 법적인 것을 떠나서 엔터 업계와 비즈니스, 갈등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 해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이사는 주주총회로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주주총회가 열려야 해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법>
제362조(소집의 결정)
총회의 소집은 본법에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사회가 이를 결정한다.
제365조(총회의 소집)
①정기총회는 매년 1회 일정한 시기에 이를 소집하여야 한다.
제366조(소수주주에 의한 소집청구)
①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회의의 목적사항과 소집의 이유를 적은 서면 또는 전자문서를 이사회에 제출하여 임시총회의 소집을 청구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청구가 있은 후 지체 없이 총회소집의 절차를 밟지 아니한 때에는 청구한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주총회의 의장은 법원이 이해관계인의 청구나 직권으로 선임할 수 있다.
대주주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즉시 해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주총회가 열려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정기주주총회는 매년 1회 열리기에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임시주주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상법 상 주주총회의 소집은 이사회가 결정하고, 정관 상 대표이사에게 소집권을 둔다. 그리고 현재 어도어의 대표이사가 민희진 대표이사이다. 즉 하이브 측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를 해임하길 원하여서 주주총회를 열자고 요구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가 주주총회를 소집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혹은 현 어도어의 이사회가 하이브 측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소집권한이 이사회에 있어도 소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법원에 주주총회소집허가 신청을 하여서 주주총회를 열게 되는데 이 때 소요되는 기간이 적지 않다. 만약 갈등이 극에 달하여 시간을 기다려 해임하기에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이 권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하이브 측은 해임 대신 사임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언론에 논란을 노출시켰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경영권 찬탈이라는 말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는 자신이 이미 대표이사이고 경영권이 있으므로 경영권 찬탈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법 상 '경영권'에 관한 정의는 없으나 대표이사나 이사회 회사의 의사결정에 관한 배타적인 권한이 있으므로 이를 경영권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또한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것이므로 대표이사나 이사회에 경영권이 있는 것이지 주주에게 경영권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에게는 이미 경영권이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결국 대표이사 및 이사를 대주주가 결정할 수 있으므로 대표이사의 경영권은 결국엔 주주들의 회사에 대한 소유권에 종속되어 있으며 영속적이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대주주는 원한다면 자신이 영속적으로 경영권을 보유할 수도 있다. 자기 스스로 혹은 자기가 선정한 사람을 대표이사로 세우고 나면 누구도 이를 해임할 수 없다. 언론에서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어도어의 지분을 다시 사온다는 내용도 있는데 그렇다면 경영권을 영속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하이브 측에서 말한 경영권 찬탈은 이런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풀어쓰자면 '경영권 지속적 확보를 위한 소유권 찬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계획대로라면 결과적으로 대주주의 경영권에 대한 영향력을 뺏어 오는 것이므로 넓은 의미에서 경영권 찬탈이라고도 볼 수는 있겠다. 그래서 언론에 공개된 계획 내용이 맞다면 경영권이 이미 있으니 경영권 찬탈이란 말은 틀렸다는 주장은 단어를 물고 늘어지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담
확실히 공부하면서 생각해보고 끄덕인 내용은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사기와 횡령과는 달리 배임은 재산상 이익의 취득을 구성요건으로 하는데, 생각해보면 기망행위와 횡령행위 자체가 나쁜 행위인 사기, 횡령과 달리 임무 위배는 애매한 경계선에 걸쳐있다. 따라서 기망, 횡령만 하면 본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사기, 횡령죄가 성립하는 반면, 배임은 임무 위배를 하였더라도 이로써 본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다면 완전히 나쁜 행위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재산죄는 일상적인 재산거래와 범죄를 명백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폭력성이 가미된 강도를 제외하면 예비죄가 없다는 것도.
대표이사 해임에 관한 것도 '근로자와 다르게 경영자는 돌발변수가 많기 때문에 해임이 자유롭구나' '그래도 최대한 이를 억제하고 형평을 갖추기 위해 손해배상이라는 수단을 갖추어 두었구나' 하면서 생각했더니 기억이 잘 났다. 아직도 민사법 연습 과목 당시 정당한 이유에 관한 판례 두문자 외우던 것이 생생하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