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음란물 시청이 금지가 아니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2009121?sid=102
버스 안에서 음란물 시청을 금지하는 서울특별시 조례가 통과되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까지 이게 금지가 아니었다고?” 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버스와 같이 사람이 밀집하고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곳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일이란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법 상 버스 안에서 음란물 시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어렵다. 버스 부분은 법의 사각지대인 것으로 보이고, 길거리 부분은 도덕과 법의 경계선으로 보인다.
기차/지하철에선 음란물 시청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
철도안전법
제47조(여객열차에서의 금지행위)
① 여객은 여객열차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5. 철도종사자와 여객 등에게 성적(性的)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② 운전업무종사자, 여객승무원 또는 여객역무원은 제1항의 금지행위를 한 사람에 대하여 필요한 경우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1. 금지행위의 제지
제79조(벌칙)
⑤ 제47조제1항제5호를 위반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철도안전법은 여객열차(지하철도 포함됨)에서 철도종사자와 여객 등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이를 제지할 수도 있도록 규정하며, 해당 위반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지하철 내에서의 음란물 시청은 여객 등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만한 행위라고 볼 수 있으므로 지하철에서는 음란물 시청이 금지되어 있고 시청 시에는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https://youtu.be/U0j00cc9-Pk?si=3YkbDRkOgesKzxqe&t=26
지하철 타다보면 열차 내부의 스크린에서 이 영상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하면 안 되는 행위들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음란물 시청을 포함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또한 금지 대상이라고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버스 안에서는 지금까지 금지되지 않았을까? 이유를 정확히 추론할 수는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어이없게도 지금까지 법에서 금지하지 않아서이다. 기차, 지하철은 철도안전법이 적용된다. 철도안전법에서는 위에서 본 것처럼 음란물 시청을 금지, 처벌하고 있다. 반면 버스 등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적용된다. 이 법은 철도안전법과 달리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도 여객의 준수사항이라는 승객의 의무는 존재하지만 철도안전법에 비하면 그 내용이 적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7조의2(여객의 준수 사항)
① 최고속도, 도로의 여건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도로에서 운행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용 자동차에 탑승하는 여객은 좌석안전띠를 착용하여야 한다. 다만, 환자ㆍ임산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여객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여객은 여객자동차운송사업용 자동차 안에서 흡연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여객은 여객자동차운송사업용 자동차 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처럼 안전띠 착용, 흡연 금지, 술 마시고 행패 등만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위반 시에도 처벌 조항은 제3항, 술 마시고 행패인 경우 뿐이고 흡연이나 단순 음주는 처벌 조항도 없다. 이처럼 철도안전법과는 달리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는 버스 안 음란물 시청에 관한 규율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스 안 음란물 시청은 금지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법의 사각지대인가 입법의도인가
기차, 지하철에서는 음란물 시청을 금지했지만 버스 안에서는 금지하지 않은 것이 단순히 입법 실수, 즉 금지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생긴 법의 사각지대 문제일까 아니면 철도와 버스는 다르다고 보아 버스에서는 금지하지 않은 것일까. 철도에 강한 규율이 적용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철도는 중요한 국가 시설이고 조직화되어 있다. 국가의 철도들은 철도망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내에서 승객과 물류의 수송을 맡고 있으며, 이는 정교한 계획표로 운영된다.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국가의 중요 네트워크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철도특별사법경찰대까지 두고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 버스는 상대적으로 민간 영역에 가깝고 상호간의 연결성도 그리 높지 않다. 철도처럼 국가가 하나하나 신경 쓸 대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철도안전법은 ‘안전’법으로 애초부터 운영 위해요소들을 관리하는 법이고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사업 자체를 관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버스 안 음란물 시청을 금지하지 않은 것은 입법의도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철도안전법 상 금지행위에도 술 마시고 행패 등이 포함되어 있어 전반적인 승객들의 보호 취지는 같을 뿐만 아니라 철도와 버스라는 공간이 개인의 법익 침해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대중교통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운송되고 있어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해도 승객이 쉽게 자리를 피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은 철도든 버스든 그 공간의 승객 상당수에게 불쾌감을 줄만한 행위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사업 자체의 관리에 치중하다보니 승객의 금지행위 규정에서 다양한 행위들을 규정하는 것을 빠뜨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연음란죄의 가능성
형법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시청했으니 공연음란죄가 적용되어 처벌할 수 있지 않을까? 판례 태도를 보면 어려워 보인다. 이에 따라 지하철이 아닌 일반 길거리에서는 공공장소라 하더라도 음란물 시청 그 자체만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형법 제245조 소정의 '음란한 행위'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 행위가 반드시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적인 의도를 표출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6. 1. 13. 선고 2005도1264 판결>
판례는 음란한 행위를 반드시 성행위 관련이나 성적인 의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아 문언상 음란한 행위를 넓게 보는 듯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음란물 시청까지 포함한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공연음란이 인정된 판례들은 성행위, 자위행위나 성기 노출 등의 행위가 수반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단순 시청은 음란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길거리 등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은 비도적적이긴 하나 형법으로도 규율되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의 음란물 시청이야 입법실수라고 볼 여지가 있으니, 대중교통에서의 음란물 시청과 일반 공공장소에서의 음란물 시청을 비교하면 차이가 존재하기는 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중교통 내에서는 위에서 말했듯 좁은 공간이고, 이를 회피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 공공장소에서는 남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그 사람을 회피해 지나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형법에서도 단순 길거리에서의 음란물 시청은 처벌에 까지 이르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음란물 보는 것이 비도덕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에 법으로 규율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여담
서울특별시가 조례로 버스 안에서의 음란물 시청을 금지하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인 강제는 어려울 것이다. 조례로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하며, 특히 형사처벌은 법률로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례 개정은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