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2년 다니는 동안 로펌으로 실무수습을 2번 나갔다. 법원, 검찰 같은 공공기관으로 실무수습 나가는 것도 좋았을 것이지만 로펌 실무수습도 매력적이다. 기본적인 기준만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는 공공기관과 달리 자기소개서와 면접으로 이어지는 로펌 실무수습은 그 자체가 큰 도전거리다. 자기소개서를 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갖춘 것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되고, 사실 한창 쓰다 보면 ‘와 지금까지 내가 뭘 한 거지.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며 반성도 많이 한다. 또한 변호사 업무의 최전선에서 동적인 실무 경험을 쌓는 장점도 크다. 실무수습 후기지만 로펌 실무수습 준비과정이나 자기소개서 노하우, 커리어 계획 설정 등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가 남이 보고 따를 정도의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닐뿐더러 이 블로그가 딱히 꿀팁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그런 공간은 아니니까 말이다.
형사소송과 닿을 수 없는 진실
다행히 두 번의 기회를 얻어 로펌 실무수습을 다녀왔다. 1학년 겨울방학의 첫 번째 실무수습은 형사전문 펌에서 했다. 형사사건 수행 구조부터 각종 자료, 변호사님들의 실무관련 경험 등 알아간 것이 많았지만 정작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판사들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부담이 매우 클 것 같다’는 근원적인 생각이었다. 형사소송은 실체진실주의를 가장 큰 이념으로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이 검사에게는 객관의무를 부여하고 변호사에게 진실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형사소송법 상의 직권에 의한 증거조사(제295조), 증거법칙(제307조 이하), 상소(제338조 이하), 재심제도(제420조 이하)도 실체진실주의를 위한 것들이다. 비록 적정절차와 신속한 재판의 원칙에 제한받긴 하나, 사건에서 발생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형사소송의 가장 큰 의무라 할 것이다. 이 때 사실인정은 판사, 즉 재판부의 소관이다. 그런데 사건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어둠 속을 헤매어야 한다. 형사사건을 사례집이 아니라 실제 기록에서 본 것은 그림 대신 사진을 본 귀중한 경험이었다. 기록은 산더미같고 체크해야 하는 쟁점도 많다.
먼저 공소장을 보면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없다. 피고인이 어떤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고 내용에 모순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피고인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정반대의 내용이 나온다. 앞서 말한 공소장의 사실은 허점이 많은 내용으로 바뀌고 피고인은 억울하게 휘말린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싸움이 반복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양측이 모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어난 사건은 분명히 1개일 텐데 양측이 반대의 말을 하고 각자 증거가 있다. 일방에서는 범죄사실을 주장하며 증거까지 제시하는데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그 증거가 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다르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한 쟁점에 대해서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는데 수 개의 쟁점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까지 하다. 관련자들의 진술, 사진, 싸운 카톡 내용 등등 증거까지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드는 생각은 ‘진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제발 알고싶다’ 였다. 눈 앞에 있을 것 같아 도달해보려 하지만 실제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실무수습 하는 나야 노력해보다가 ‘사실관계가 진짜 복잡하다’ 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검토해보면 그만이지만 판사들은 이 상반되는 사실 사이에서 자신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을 결정할 권한이자 의무를 갖고 있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실체를 파보며 판사는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인정한 사실에 따라 누군가가 형사처벌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억울하게 참아야 할 수 있다. 그 부담을 자신이 모두 안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기록을 읽으며 경험을 쌓는다면 그 부담이 조금은 덜할까.
유기적으로 얽힌 법적 문제들
2학년 여름방학에는 로펌의 노동팀에서 실무수습을 했다. 노동정책 현안, 실무적 문제, 요구되는 능력 파악 이번에도 현장에서만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동시에 가장 크게 와닿은 건 ‘종합적 법률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변호사’의 가치였다. 실무수습 중 노동사건 검토가 있었는데 누가 봐도도 분명한 노동 분야 사건이었다. 당연히 노동법 법리를 중심으로 조사하여 검토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노동법 법리만을 적용하면 사안이 너무 단순하기도 했고, 노동법 관계로 보기에는 구조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의혹을 따르기로 하고 중점을 바꾸어서 새로운 내용으로 검토했다. 다음 날 강평에서 알고 보니 그 사안은 외관은 분명 노동사건이지만 실제로는 민법의 관점에서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곧바로 노동법 법리로 포섭하지 않고 민법 관점에서 사건 구조를 정리하고 나면 미심쩍은 부분이 하나하나 깔끔히 정리되면서 정 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어제 안전하게 가는 대신 나만의 해석을 시도해보는 모험을 한 것이 다행이었다. 강평 변호사님도 내가 유일하게 노동법 법리만을 기술하는 대신 ‘사안의 분석’ 목차를 달고 민법 해석 시도를 한 사람이라고 피드백해주셨다.
짧은 시간동안 한 과제였지만 그 과제는 변호사가 종합벌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임을 깨닫는 계기였다. 변호사가 최소 7법을 모두 공부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전문 분야를 정해서 배출될 수도 있다. 노동관계법만 공부해 시험 통과한 노동변호사, 형사법만 수련한 형사변호사 등등. 인력 공급 효율은 그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률적 문제는 일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뛰어넘어 연결된다. 당장 형사 문제가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딸려오는 것이 민사상 손해배상이고, 행정기관과 다툴 때도 처분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지만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법은 권리와 의무가 가장 직접적으로 변동하는 영역이므로 당사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공격방어방법은 모두 끌어와야 한다. 이 때 끌어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사실상 법의 모든 영역이기 때문에 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특정 분야의 사건이라도 그 분야 밖으로도 검토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리고 그 창의성이 변호사 실력의 지표이기도 하다. 단지 실무적인 지식을 많이 갖춰 일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 보아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줄 아는 것이 변호사의 진짜 존재 가치였다.